'베스트 앨범은 돈벌이용 꽃다발이다.' 라는 건 최근까지의 내 기조였다. 물론 이 기조는 약 20년 전 쯤에 형성된 가치관이다 보니 앨범이 아닌 음원 위주의 현 상황에 적합한 것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이런 가치관은 여전히 이른바 '리패키지 앨범'이란 상술에 대해서만큼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본다. 수많은 리패키지 앨범들중 과연 팬들이 원해서 새롭게 발매되는 앨범이 얼마나 될까? 난 부정적이다. 그냥 닥치고 질러줄 팬층이 있으니 발매하고 보는 것일 뿐이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내가 이른바 '덕질'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니다. '덕질'은 심심한 세상에서 나름 공을 들일 만한 대상을 갖게 된다는 점에서 적어도 심리적으론 꽤 이로운 효과를 준다. 애를 키우는 것이나 강아지를 키우는 것과 덕질은 본질적으로 그리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단지 사회적으로 얼마만큼 인정을 받을 수 있는가란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른바 '사회적 인정'이란 건 습자지만큼이나 얄팍하고 3월에 내리는 눈만큼이나 빈한한 것이니 무시해도 큰 문제없다.
주의할 것은 그렇다고 해서 그걸 가볍게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이 많다는 건 아니다. 심지어 그걸 무시하는 사람들중 열에 여덟, 아홉은 사회적 인정의 실체가 얼마나 나약하며 위선적인가를 알기 때문에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사회성 자체가 떨어지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 뿐이다. 그러니까 열에 여덟, 아홉은 사회적 인정이란 것이 무엇인가를 인지하지도 못 하는 상태일 뿐인 거다. 
아무튼 그렇다. 난 여전히 베스트 앨범에 대해서 부정적이다. 어쩔 수 없다. 음원이 아닌 앨범이 음악 시장의 주류였던 시절엔 음악 한 곡이 아니라 앨범 전체가 하나의 음악으로 분류되는 것이 보통이었으니까. 그 덕택에 괜찮은 곡 하나 두개 채우고 나머지는 대충 표절곡으로 땜질하던 가요가 폄하의 대상이 되었던 것도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었을 것이다.
물론 그런 시각은 그리 온당한 것은 아니다. 외국 노래들의 경우 어지간한 질적 수준을 담보하지 못 하면 국내에서 발매되지 못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니 단순히 그런 기준으로 가요와 외국 가요의 수준을 나누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그러나 알다시피 그런 구조적인 배경까지 떠올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이는 알다시피 그야말로 극소수다. 대부분은 그냥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것만 믿을 뿐이다. 그게 왜 하필이면 내게 보이고 들리는 것인지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그렇다고 앨범을 그런 식으로 내는 걸 포장해주려는 의도는 아니다. - 글을 쓰면서 자꾸 이런 쓸데없는 말을 덧붙이게 되는 건 세상을 이분법으로만 바라보는 인간들이 워낙 많아서다.
아무튼 최근까지도 난 베스트 앨범에 대해서 최근까지 그런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 그런 내가 베스트 앨범에 대해 생각을 바꾸게 된 계기는 이렇다. 주기적으로 해오던 컴터의 자료정리를 무려 약 1년여를 미루다가 하드 용량의 압박 탓에 별 수없이 손을 댔는데 그 와중에 음악 자료를 살피던 중 낯익은 그러나 오랫동안 관심을 두지 않았던 이름을 발견했다. 'Anthrax'
그렇다. 바로 그 밴드다. 한 때는 속주의 대명사로 불리며 나름(...) 두터운 팬층(...)을 확보했던 정통(...) 메탈밴드. 아마 한 때는 내가 메탈밴드들중 최고라 여기며 아주 즐겨 들었던 밴드였다. 물론 그 이후에 개러지 사운드, 시애틀 개러지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이런 류의 연주가 더 심심하다고 여기며 자연스레 멀어졌다. 그 밴드의 음악을 오랜만에 찾은 거다.
그래서 나름 향수에 젖어 음악을 들어볼까 했는데 난관에 봉착했다. 하도 오랫동안 안 듣다보니 대관절 이 밴드의 대표곡이 뭐였는지 내가 어떤 노래를 좋아했었는지 도저히 기억이 안 나더라는 거다. 그렇다고 내가 '나는 남들과 다른 사람이고 남들과 다른 취향을 가진 독특한 사람'이란 수준의 소아병적 열등감에 휩싸여 사는 사람은 아니다 보니 아마도 이 밴드의 노래도 남들이 대충 좋다고 하는 범위와 거의 일치한다고 보면 된다. 그러니까 베스트 앨범만 찾으면 모든 게 손쉽게 해결이 되는 건데 그게 없는 거다. 아예 발매 자체를 안 했던 것인지 아니면 했는데 내가 갖고 있지 못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냥 내가 가지고 있는 음악을 전부 다 걸어놓고 듣고 있는 중이다. 이 야밤에 말이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지만 나이가 들어서 머리가 그냥 스폰지에 가까와지기 시작하면 베스트 앨범같은 요약본이 필요하더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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