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평등에 대한 편견
혹자는 군가산점제 논쟁에 대해 '남녀간의 갈등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백번 지당하신 말씀이다. 애시당초 '군가산점'문제는 그런 류의 불필요한 갈등관계로 발전할 필요조차 없는 문제다. 왜냐하면 그 제도가 가지고 있는 '불평등한 요소'때문이다. 인간이 특정 단계로 올라가기 위한 과정중에 어떤 이들에겐 다른 이들에게 없는 장벽이 존재한다면 그게 바로 '불평등'이다. '군가산점제'는 바로 그런 요소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 문제가 '남녀간의 갈등'으로 번지는 것은 옳은 시각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벌어지는 군가산점 문제는 언제고 '남녀 갈등'으로 번질 가능성을 안고 있기도 하다. 이른바 '국방의 의무'란 것이 명시적으로 남녀 차별을 지적하고 있진 않지만 실제로 남성들에게 주로 주어지는 의무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 나라에선 여성들도 군대를 보내야 한다는 식의 '같이 죽자'는 어처구니없는 방법을 대안이라고 제시하는 단세포적인 현상들도 일어난다. 알다시피 이런 류의 얼척없는 주장엔 '너희들도 애 낳아봐라'는 반론이 터져 나오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 두 반응 모두 얼척없기는 매한가지다.
재미있는 현상은 바로 이런 논쟁의 와중에 등장한다. 이들은 짐짓 자신은 매우 중립적인 사람인 체 한다. 혹은 실제로 그렇게 믿고 있을 수도 있지만 만약 그렇다면 매우 비극적인 일이기도 하다. 아무튼 이런 이들의 주장의 핵심은 이렇다. 현재 남녀간의 차별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 문제의 책임은 양쪽 모두에 있다는 주장이다. 흔히 TV드라마에 많이 등장하는 '며느리의 가장 큰 적은 시어머니와 시누이'라는 식이다. 즉 남성들이 아무리 여성들을 좋게 봐주고 평등하게 봐주려 해도 여성들이 그것들을 무위화하는 행동들을 보인다는 말이다. 고로 여성들에게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는 식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 자체로 매우 편파적인 시각이며 사실상 여성들을 차별하는 다른 시각일 뿐이다.
이런 시각의 가장 큰 문제는 '결정론'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여성은 원래부터 이렇고 남성은 원래부터 이렇다'라는 식의 결정론 말이다. 하지만 인간은 흔히 일컬어지는 바 사회적 동물이며 선천적인 본능보나는 후천적인 환경과 교육에 더욱 영향을 받는 존재란 점에서 이런 '결정론'은 아주 잘못된 시각이다. 즉 여성들은 태어날 때부터 그런 존재가 아니라 태어난 곳의 사회적, 문화적 영향하에서 '어떤 여성'으로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문제의 화살은 다시 남성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결정론에 경도된 그들이 지적하는 바 여성들의 부정적인 모습은 고스란히 남성들이 거의 모든 힘과 결정을 주도하는 이 사회의 질서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란 결론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익히 알다시피 조선 초기이후버터 이 나라의 모든 종류의 권력은 남성들에게 있어왔고, 그 질서가 아직도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고로 여성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남성들이 그렇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왜 남성들이 야근을 하고 숙직을 하는(사실 왜 이런 것들을 그렇게 중요한 것처럼 말하는지 솔직히 이해가 안 가지만) 동안 여자들은 집에 가서 애를 보고 살림을 하는 걸까? 남성들이 가사노동을 여성들만의 것으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만들어 놓고 그들이 야근과 숙직을 못 하니 차별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엄청난 모순이다.
결정론에 경도된 이들이나 혹은 그 언저리에 있는 이들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단순히 노동의 특성에 따라 분담을 한 결과일 뿐이라고. 그렇다면 그 특성에 따라 드러나는 차이에 대해 차별을 가해선 안 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이들은 또 이 부분은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왜 그럴까? 결국 본질적으로 이들이 '남성우월론자'들이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하는 일은 가치가 없는 일이라며 그런 일 좀 한다고 남성들과 같은 서열에 놓일 수는 없다고 판단한다. 그들이 짐짓 자신들은 매우 중립적인 인간인 양 떠들지 몰라도 본질적으로 여전히 '남성우월론자'이자 '남녀차별주의자'인 것은 변하지 않는다.
이런 모순적이고 정신분열증적인 양태를 보이는 인간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들과 같은 인간으로, 그리고 같은 시공간속에서 살아가고, 또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참 버겹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