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은 늘 시궁창

난 기상청이 고맙다...

The Skeptic 2008. 1. 12. 02:42
이야기를 에둘러 시작하는 것은 본래 하고자 한 이야기가 그리 인상깊지 않기 때문이다. 이 글도 그렇다. 그래서 처음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건망증과 난 거리가 먼 사람이란 말이다. 이 날 입때껏 살면서 지갑이라곤 딱 한번 잊어 버렸다. 그마저도 돈 한푼없이, 지갑입장에선 실로 민망했으리라. 주민증 역시 마찬가지다. 새 주민증이 나오기 전까지 내가 들고 다니던 주민증은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자마자 나잇살 처먹었으니 이 증서받고 나잇값하라며 국가에서 처음 만들어준 그 주민증이었다. 여담이지만 그 주민증이 새 주민증으로 바뀔 때까지 나잇값이란 걸 제대로 해본 기억이 없다. 새 주민증은 발급받고 딱 한번 잃어버였다. 그것도 범인은 내가 아니라 울 엄니였다.

아무튼 그런 인간이다 보니 다른 물건들도 잘 안 잃어버린다. 우산은 초딩 시절 몇 번이 전부다. 요즘은 잃어버린다기 보단 귀찮아서 놓고 오는 경우가 많다. 그 우산들 역시 다음에 유용하게 쓸 수 있으니 손해는 아니다. 게다가 한동안 내 가방엔 항시 우산이 들어 있었다. 가방에서 꺼내놓는 것도 귀찮고 갑작스레 소나기라도 내리면 망연자실한 사람들 틈에서 여유롭게 꺼내 쓰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다보니 우산도 무겁다. 그래서 거의 안 가지고 다니는 요즘이다.

그런 내가 오늘 아침엔 우산을 챙겨 가지고 나갔다. 전날 본 뉴스에서 오늘 눈이 올 것이라 했기 때문이다. 그런 날이면 난 어김없이 우산을 챙긴다. 우산이 귀찮거나 무겁다고 느껴지면 방수기능있는 모자달린 점퍼라도 챙겨 입는다. 실제로 내가 집을 나설 즈음엔 거의 눈이 그친 뒤였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올 저녁무렵엔 맞기엔 좀 벅찬 눈이 내렸고 난 우산 덕을 톡톡이 봤다. 그런데 뉴스를 보니 사람들이 기상청의 예보가 틀렸다고 난리다. 난 오히려 그 난리 피운다는 사람들이 더 이상하다.

분명히 기상청에선 눈이 온다고 했다. 물론 양에 대한 예측은 틀렸지만 말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눈이 올 것이란 예측은 맞지 않았는가. 그리고 해가 지날 때마다 한반도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날씨가 예측불가능할 정도로 난동을 부리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 아닌가. 오죽하면 매년 연초마다 전 세계 최고 권위의 기상학자란 사람들이 나와서 친절하게도 '올 해는 사상 유례없는 이상기온이 판을 치겠습니다'라고 싹싹하게 말해 주지 않던가. 그들이 왜 그리도 상냥하게 굴까? 앞으로 일 년동안 기상예보가 엄청나게 많이 틀릴 것이란 말을 돌려 하다보니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결론은 기상예보는 맞는 것보다 틀릴 확률이 더 높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과학이 발달하는데 왜 자꾸 틀리냐고 반문하는 인간들이 있을지 모른다. 대답은 이거다. 너거들이 그렇게 잘난 척 내세우는 과학과 그 과학을 철저하게 돈벌이로 이용하는 자본주의와 그 자본주의를 맹신하는 인간들의 머릿수가 줄지 않는 이상 과학/자본주의/자본주의자들의 삼각편대가 만들어낸 문명의 쓰레기들이 지구의 이상기온을 훨씬 증가시킬 것이고 그 결과는 더러운 눈맞고 당신들 대가리가 대머리가 되는 것 이상의 문제를 야기할 것이란 사실이다.

환경이야 어찌 되든 상관없이 배를 산으로 들로 들이겠노라고 아우성치는 노가다 출신 대통령 당선자나 그 덕에 부동산 투기라도 좀 해볼까하고 눈을 희번덕거리는 멍청한 인간들에게 말하건데 너거들은 기상청 예보가 틀렸다고 투덜댈 자격 한 개도 없다. 대운하파면 과거 맹박이의 동업자들이었던 건축업자들은 주머니 좀 불릴 것이고, 일자리 없다고 아우성치던 인간덜은 그 기간동안 비정규 임시 노가다로 열심히 삽질해서 돈 좀 벌것이고, 부동산 투기꾼들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이 정도면 됐지 않나. 당신 들이 원하던 세상이 어차피 그렇게 굴러가게 되어있는 건데. 그렇다면 기상예보 틀려서 눈 좀 맞았다고 아우성칠 필요없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놓치는 것이 세상이치인데 언감생심 어떻게 두 개를 한번에 처먹으려 드는가. 하긴 인간의 욕망이란 항상 그렇게 비상식적이긴 했었다. 그리고 그 비상식이 몰상식한 상황을 만들었고 그 덕에 오늘 당신들은 속절없이 눈을 맞은 것이다.

아무튼 이 모든 열악한 상황과 앞으로 더욱 열악해질 것이 불을 보듯 빤한 세상에서 그래도 이만큼이라도 기상예보를 하느라 악전고투하고 있는 기상청이 난 항상 고맙고 한편 안 먹어도 될 욕을 들어먹는 것을 보면 측은하다. 기상청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