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은 늘 시궁창

조선일보 '순정'이란 미끼를 던지다...

The Skeptic 2008. 6. 1. 15:40
난 대외적, 공식적으로 '무신론자'다. 하지만 속내는 '종교혐오론자'에 가깝다. 그래서 리처드 머시기라는 사람이 벌이고 있는 '무신론 운동'에 대해서 열렬한 지지를 노내는 사람이기도 하다. 내 견해에 대해 혹자는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종교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 종교를 사적인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자들이 나쁘지' 대체로 이런 견해를 피력하는 사람들의 경우 종교인들이 많다. 해서 난 이런 견해를 말하는 사람들에게 대충 긍정해주고 넘어간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중의 하나가 바로 자기부정이란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의견이 스스로에 대한 적당한 타협이란 것을 알면서도 나로선 더 이상 강제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종교는 그 자체로 이미 인간의 상상력을 가로막는 억압적인 면을 갖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죄의식 덮어 씌우기'다. 기독교에서 흔히 말하는 '원죄의식'의 그 대표적인 예다. 사람들은 종교와 맞닥뜨리는 어느 순간 갑작스레 영문도 알 수 없는 '죄'를 지은 존재가 되고 그 '죄의식'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거의 모든 종류의 종교들이 이런 방식을 사용한다. 특히나 신흥종요, 혹은 사이비 종교일수록 이런 경향은 더욱 강하다. 심지어 사이비가 아니라는 종교계 일각의 종교지도자들조차도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이런 추잡한 방법을 사용한다.

알다시피 '죄의식'이란 인간의 지적활동의 범위를 심각하게 축소시킨다. 그런 의식이 크면 클수록 인간은 사실상 '짐승'수준의 존재로 전락하게 된다. 어쩌면 지구상의 모든 종교는 모든 인간들을 짐승으로 만듦으로서 자신들의 세뇌와 지도하에 평화를 이루는 것을 그 최종 목적으로 삼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얼마전 기사를 보니 조선일보에서 '순정'이란 단어를 들먹였다. 인간들이 얽히고 섞여서 살아가는 세상사에 '순정'이란 없다. 그런 것은 10대들의 판타지를 자극하는 할리퀸 소설에나 등장하는 말일 뿐이다. 현실에선 방법상의 정당함을 논할 수는 있을지언정 '순정'같은 단어가 끼어들 자리는 어디에도 없다. 현실에서 '순정'이란 단어가 등장하는 이유는 앞서 말한 종교의 '죄의식 덮어 씌우기'수작과 같다. 사람들의 인지능력의 범위를 좁히기 위해서다. 왜? '순정'이란 단어의 의미가 무색하게도 그들 역시 '불순한 의도'를 갖기 때문이다. 분명 조선일보는 미친 소 수입저지를 위한 집회가 조금이라도 격화되는 순간 '짓밟힌 순정'이란 닳고 닳은 레파토리를 늘어 놓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죄의식을 덮어 씌우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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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촛불집회엘 다녀왔다. 새벽 3시쯤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 직후 강제해산이 있었다고 한다. 오늘도 일을 나와서 인터넷 기사를 보고 있는데 기분 참 드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