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은 늘 시궁창

신경민 앵커 교체에 대한 소고

The Skeptic 2009. 4. 14. 12:30

'자기 객관화'라는 말을 자주 했었더랬다. 사실 이건 인간, 특히 집단적 존재로서의 인간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사회의 영향을 받으며 가치관을 형성해가는 존재이지만 절대 다수의 인간들은 그 사실을 모르며, 자신의 가치관은 '하늘에서 내려준 천성'쯤으로 받아들이며 하늘이 주신 것이기에 다른 그 어떤 것보다도 더 소중한 것으로 여긴다. 인간이 자신의 삶중 거의 8할 이상의 시간을 그 속에 빠져 사는 '주관성의 함정'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나마 교육과 윤리라는 것이 존재해서 나만이 아닌 타인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고 거의 반강제로라도 가르친 덕에 인간들은 '주관성' 혹은 '이기주의'에 대해서 안 좋은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어차피 우리는 그리고 어쩌면 이 말을 지금 지껄이고 있는 나조차도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불쌍한 인간인지라 머리로는 그렇게 살면 안 돼라고 말하면서 몸은 정반대의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기 객관화라는 것이 중요하다. '왜?'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는 인간은 인간이 아니라고 내가 아는 누군가가 말했었다. 난 그렇게 말하고 싶다. '스스로의 생각과 행동에 대해 의심하지 못 하는 자, 인간이 아니다'라고.

 

신경민 앵커가 교체되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힌 듯 하다. 김미화씨는 살아남고. 아무래도 외부인보다는 자기 회사 직원자르는 편이 더 수월할 것이라 여긴 모양이다. 엠뷔씨의 고위간부들은 여전히 '방송에 대한 철학'과 '공정성' 등등을 운운하고 있다. '공정성'이라. 과연 공정하다는 것은 무엇을 지칭하는 것일까? 엠뷔씨 고위간부들의 공정성이란 말하자면 '한나라당과 민주당'에 대해 공평하게 방송시간을 배정하는 것이라 여기는 것 같다. 그러나 대부분이 사람들은 그 따위 것에 관심없다. 그건 학벌만능주의 나라에서 정치, 언론, 방송, 재계 등등의 모든 부문에 걸쳐 거미줄처럼 연을 맺고 있는 이른바 일류 고등학교와 대학교출신 선후배 동기간의 제 식구 감싸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생각이 있는, 그리고 생각이란 걸 할줄 알고 조금이라도 그걸 써먹을 줄 아는 사람이라면 그걸 일컬어 '공정하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물론 그래도 그렇다라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적어도 그 '망할 정치'가 자신의 삶과 크게 관계가 없다고 여기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그러나 다시 한번 강조하건데 민주주의 국가에선 상관이 없다고 여기거나 말거나 책임은 같이 지는 거다. 비합리적이라고? 그럼 국가가 없는 곳에 가서 살면 된다. 민주주의건 독재건간에 국가가 존재하고 그 국가가 나눠주는 주민증에 지장찍는 순간 그건 피해갈 수 없는 원죄와 같은 거니까.

 

적어도 '공정하다'라고 하는 것은 출신이 그지색희건 금숟갈을 입에 물고 나오건 간에 최대한 비슷한 출발선에서 경쟁을 시작할 수 있으며 살아가는 와중에서도 불평등한 차별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그게 꿈과 같은 이야기라는 거 안다. 그러나 근사치에 가까워지도록 끊임없이 시도해볼 수는 있다. 그런데 인간들은 어느 순간 그것을 포기한다. 그만큼 현실의 벽은 높고도 높다. 물론 그 높은 벽은 포기하는 사람들이 기꺼이 벽돌이 되어 높이를 올려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엠뷔씨의 고위직들께옵선 스스로 공정해지기를 포기했고, 현실의 벽을 높이기 위해 한 몸 바치기로 결심을 하신 양반들이시다. 물론 난 그 양반들이 그런 생각이나 굳은 결심을 새삼스레 다졌을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것을 한다는 것 자체가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고 '염치'를 아는 인간이라면 '공정성'이니 하는 따위의 허접한 핑계따위 늘어놓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고도로 정치적인 언술행위를 한 것일 테고. 무엇이든 사실 상관은 없다.

 

그 행동이 신념에 찬 행동이라 할지라도 분명한 것은 그 신념이란 것은 단순히 자기 주관성에 빠진 행동일 뿐이며 결과적으로 자신에게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유리한 것을 선택한 결과다. '그것이 비판받을 일은 아니지 않은가?' 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물론 그렇다. 원칙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속한 계급의 계급의식이나 계급성에 충실한 것은 나쁘다고 볼 문제가 아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방송 철학'이니 '공정성'을 운운하는 행위는 비록 자신이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고 있다 하더라도 거짓이며 기만행위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결국 학벌지상주의를 통한 계급 차별의 선봉에 서있다고 봐도 무방한 이들의 언설 행위에 많은 국민들이 설득당한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에 거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머리에서 발끝까지 학벌 지상주의의 노예이기에 가능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