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먹고 바람똥

KT노조의 민노총 탈퇴로 본 정치경제(1)

The Skeptic 2009. 7. 20. 02:01

조중동을 비롯한 극우 찌라시들이 좋은 건 하나 물었다. 민노총 산하 산별노조중 IT노종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KT노조가 민노총 탈퇴를 결정한 때문이다. 그 외에도 민노총이 출범하던 당시부터 같은(?) 행보를 해오던 상징성있는 노조의 탈퇴라는 점까지 부각되면서 극우 꼴통 찌라시들은 연일 이념대결로 몰아가느라고 여념이 없다. 애시당초 이념과는 별 상관없는 문제인데 말이다. 몇 가지 짚어보자.

 

'이념의 문제인가?'

 

이 질문자체가 성립하기 위해선 극우 꼴통 찌라시들이 주장하는바 '실용주의'가 이념인가 하는 것이 일단 먼저 증명되어야 한다. 극우 꼴통들의 주장이 다 그렇듯이 역시 '아니다'. 실용주의란 사건과 상황을 대하는 사람의 처세의 문제이지 가치관의 문제는 아니다. 말하자면 '실용주의'란 방법과 수단의 차원이지 목표나 지향점의 차원은 아니란 말이다. 게다가 실용주의자란 말 자체가 이미 남조선에서 '이념적 지향없음'이란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념의 승리이자 실용주의 승리"라는 말은 그 자체가 모순덩어리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한 편으론 '실용주의'란 단어가 이렇듯 무가치한 속성을 갖은 탓에 정치적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 경우엔 "이념의 승리이자 실용주의의 승리"라는 견해는 드러난 사실에 대한 평가라기 보다는 그 사건을 통해 대중적으로 특정한 정치적 효과를 확산시키기 위한 정치적 선동의 언설이 된다. 이 경우 여전히 무기치한 단어인 '실용주의'는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이념적 지향을 갖는 것으로 대치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결국 '신자유주의'일 수 밖에 없다. 다시 정리하자면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이미지를 풍기는 '실용주의'를 앞세운 스탠스를 통해 대중들의 정치적 경각심을 해체시키는 동시에 의미상으로 "신자유주의의 승리이자 실용주의의 승리"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효과를 볼 수 있다.

 

흔하지만 매우 교묘한 정치적 수작이다. 문제는 이런 정치적 조작이 대중적으로 꽤 잘 먹혀든다는 점이다. 사실 기초적인 수준의 분별력과 집중력만 발휘해도 그렇게 쉽사리 넘어가지 않을 수 있는데 알다시피 남조선이란 나라와 국민들이 그런 존재들이 아니다. 실제로 극우 꼴통 찌라시들이 대놓고 자기들이 이런 정치적 수작을 벌이고 있음을 고백해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KT노조의 선택에 대해서 '이념을 버리고 고용안정을 얻은'이란 표현을 사용한다. 이걸 뒤집어 말하면 이념을 취하면 고용안정을 이루기 힘들다는 뉘앙스를 풍길 수 밖에 없다. 이것은 노동시장의 유연화, 나아가 전세계적인 노동시장 유연화를 통한 노동계급의 무력화와 자본으로의 전일적인 복종체계를 지향하는 신자유주의 방향성과 딱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민노총의 위기?'

 

사실 이 문제는 그리 새삼스러울 것고 없고 따라서 굳이 위기라고 지칭할만한 상황도 아니다. 애시당초 군사독재 시절부터 살인적인 수준의 노동착취를 통한 고도 압축 성장을 지향해온 나라이며 이름만 같은 자본주의일뿐 상황이 많이 달라진 지금조차도 그런 방식이 유일한 경제발전의 길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인간이 대통령이며, 국회 제 1당인 것이 이 나라 남조선의 수준이다. 그 상황에서 그런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이런저런 방식으로 탄압다는 것은 그리 새로운 일이 아니지 않을까? 외려 위기는 민노총이 아니라 기업과 현 쥐박이 정권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건 다음에)

 

KT노조가 가진 상징성이란 측면은 크지만 어차피 상징은 상징이다. 이미 탈퇴결정이 난 순간 KT노조는 노조라기 보다는 단순한 이익단체로서의 속성을 갖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그것이 나쁘다고 말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멍청한 짓이라는 거다. 개별 노조가 개별 사업장의 이익단체가 되는 순간 정치적인 차원의 변화를 추동할 세력이 되길 포기하는 것이다. 그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스탠스를 그렇게 축소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만약 개별 노동자들이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그 노동자가 받는 임금만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러나 IMF사태이후로 실질임금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부분의 노동자들에게 그것은 불가능한 꿈이다. 사교육비의 증가, 의료민영화같은 문제를 개별 노동자들이나 이익단체로 전락한 노조에서 해결할 수 있을까?

 

물론 남조선이란 나라가 굳이 노조의 정치적인 움직임없이도 정치가 그럭저럭 큰 문제 안 일으키고 굴러갈 수 있다면 문제는 안 된다. 일반적으로 그런 경우라면 시민운동이 활성화되어있고 그 시민사회나 단체들의 견해가 정치에 반영될 수 있는 직접민주주의의 기초가 잘 다져져 있거나 아니면 제도권 정치판안에 극우꼴통들 말고 진짜보수와 진보가 공당으로서의 책임정치를 어느 정도 구현하고 있으면 된다. 그러나 불행히도 남조선은 그중 어느 것도 구비되어 있지 않다.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지방자치 단체들은 지방 극우 꼴통 토호세력들에게 점령되어 있고

시민단체들의 의견은 아무리 좋아도 제도권 정치판에서 무시당한다. 그리고 남조선의 정치판은 극우 꼴통 딴나라당이 국회 제 1당이고 보수라 부리기에 민망한 민주당이 2순위, 사실상 딴나라당의 2중대인 당이 서열 3위다. 글쎄? 어느 모로 봐도...

 

혹자는 개별 단위 사업장 노조들의 요구 사항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정치투쟁으로 일관하는 민주노총의 문제를 지적하기도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것은 결코 온당한 지적이 아니다. 오히려 그 시각자체가 단순한 포퓰리즘의 발현이라 보여진다. 그런 견해는 마치 국회의원더러 지역구의 현안 해결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고 욕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비록 지역구의 지지를 통해 당선되었다곤 하지만 국회의원들은 나라의 전반적인 입법업무를 추진하는 곳이지 지역숙원사업을 위해 존재하는 이들이 아니다.

 

민주노총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단위 사업장의 문제가 한 나라의 노동계가 처한 문제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경우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만 어차피 그런 성격의 문제라면 이미 단위 사업장의 문제가 아닌 정치적인 문제다. 이 경우 민주노총에서 정치적인 투쟁을 제안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도 없다. 이런 초보적인 수준의 분별력조차 결여한 채 민주노총의 정치투쟁을 문제삼는 것은 자신들의 일상과 뗄래야 뗄 수없는 정치문제들을 구태여 분리시키고자 하는 또 다른 정치적인 수작에 불과하며 결과적으로 극우 꼴통들의 존립기반을 공고히 만들어 주는 행위다.

 

최근에 터져나온 민주노총 내부의 윤리적인 문제들을 거론하는 것 역시 전형적인 정치적 물타기다. 민주노총 내부에서 벌어진 사건들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민주노총의 지도부를 물갈이하고 사건 가해자들을 조직에서 걸러내고 나아가 사법적인 처리까지 받게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민주노총의 지향점과 해야할 일의 성격까지 바꿀 순 없다. 이 당연한 사안들을 뭉뚱그려 정치적인 타격을 가하려는 것은 별 근거없는 정치적 마타도어에 불과하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런 마타도어들이 별다른 근거나 논리적 정합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으로 잘 먹혀든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실상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그 넘이 그 넘'이란 어처구니없는 소리들을 해댄다. 그래서일까? 확고한 이념이나 정책도 없이 단순한 정치적 마타도어로 벌어 먹고 사는 극우꼴통 정치인들과 언론들은 자신들의 잘못이 드러나도 수긍하는 법이 없다. 그저 개싸움판으로 이끌어 가며 우긴다. 그런데 또 재미있는 것은 국민들은 사건의 본질과 전개, 혹은 물증을 통해 잘잘못을 판단하기 보다는 개별 정치인이나 정당이 사건을 대하는 자세만을 보고 판단하려고 든다. 그래서 '저렇게까지 우기는데 설마 정말로 그랬겠어'라고 쉽게 믿어 버린다.

 

정치가 재미있고 남조선 국민들이 재미있는 종자들인 이유다.

 

아무튼 KT노조의 탈퇴는 신자유주의를 넘어 무능과 무식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는 현 정권하에서 벌어졌기에 그들에게나 민주노총에게나 안타까운 일이지만 결국 언젠가 한 번은 겪어야 할 문제일 뿐이다. 당연히 닥칠 문제가 닥쳤다고 해서 위기운운하는 것은 지나친 발상이고 다만 그 문제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 하는 순간 위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민주노총이 보여준 모습은 그리 나쁘지 않다. 앞서 말한 것처럼 재미있는 나라와 국민들이기에 잠깐 머리로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문제도 굳이 직접 실행해봐야 직성이 풀린다는 데 굳이 말리거나 바지 가랑이잡고 늘어질 필요없다.

 

정말 최후의 최후의 순간이 도래하면 민주노총은 여전히 산하에 남아있는 단위노조들의 권익을 위해서만 활동하고 싸워주면 그만이다. 탈퇴한 노조따위 관심끄고 말이다. 애시당초 탈퇴한 노조가 원한 관계가 그런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