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폴라니
아마도 최소 10년은 더 된 이야기일 게다.
'칼 폴라니'라는 사람이 쓴 책을 읽었었다. 그러나 그 책의 내용도 기억나는 문구도 한 줄 없다. 왜 그런고 하면 당시 내가 그 책을 읽는 광경을 어느 선배가 목격했었더랬는데 대번에 이렇게 말하더라.
"자유주의 타협주의자"
일단 그 당시 읽고 있던 책의 내용만으로 미루어 보더라도 칼 폴라니가 그 선배에게서 그런 평가를 들을만한 사람이 아니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단정적인 어투로 그런 말을 내뱉는 선배의 당당함에 어안이 벙벙해졌었다. 물론 1학년 햇병아리 시절부터 선배알기를 개떡같이 알았던 인사인지라 발끈했고 별 의미없는 논쟁 아니 시비를 벌이다 끝났는데 그 뒤로 웬지 그의 책을 안 읽게 되었다. 아마도 기분이 상한 탓이었을 텐데 생각해보면 그것 역시 워낙 어려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여기저기서 심심찮게 그 아자씨의 이름을 듣게 된다. '칼 폴라니의 재발견'쯤 되는 모양이다. 물론 난 여전히 그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하지 못 한다. 그리고 그 때문에 그의 책을 다시 읽어보아야 할 필요성도 별로 느끼지 못 한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필요'에 의해 좌우되는 마음가짐이지 '맹세'와 같은 부질없는 짓거리는 아니다. 단지 '필요'와 관련된 문제일 뿐이다.
다만 궁금한 것은 그 옛날 나와 쓸 데없는 시비질을 했던 그 선배는 과연 지금의 현상을 어떻게 보고 있을 것인지 궁금하다.
여전히 자신의 그 근거없는 단정을 고수하고 있을까?
아니면 무언가 새로운 방법을 찾기 위해 공부를 하고 있을까?
그것조차 아니라면 아예 모든 것을 망각하고 있을까?
예상이란 것은 늘상 의미없는 짓거리지만 가장 흥미진진한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예상컨데 아마도 세번째 경우가 가장 유력할 것 같다.
읽어보지도 않았던 것이 분명한 책의 저자에게 확신에 찬 정의를 내리는 인간에게 진심 - 아니 인간에게 진심이 있을 것이란 기대는 인간을 너무 과대평가한 결과니 진실정도로 해두자 - 내지는 진실이 존재할 것이란 건 지나치게 관대한 평가아닌가?
그따위 걸 믿느니 신을 믿고 말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