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ki

명절 연휴 영화 순례 1편 <트럭>

The Skeptic 2009. 10. 6. 01:29


본질적으루다가 말해서 영화는 '이.야.기'다. 제 아무리 쭉빵한 여배우-샤방한 꽃미남 배우를 모시든, '충격! 파격노출!'이란 노이즈 마케팅을 때리든 상관없이 일단 이야기가 부실하면 사람끌어모으기 어렵다. 그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에도 중요한 몇 가지가 있다. 


먼저 에피소드들이 난무하지만 그 개별 사건들이 독립적이지 않고 주제의식의 틀안에서 벗어나지 않는 일관성. 두번째는 그 사건과 주제의식을 직접적으로 표현해낼 수 있는 캐릭터의 구축이다. 사실 이 두 가지만 잘 만들면 영화제작상의 기술적 실수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것이다. 그만큼 어렵다는 말이기도 하다. 

영화 트럭은 사실 매우 참신한 모티브를 가지고 출발한다. 허나 그 참신한 모티브를 위한 정지과정은 진부하다. 가난한 아버지와 병을 앓고 있는 딸, 꼭 필요한 수술비, 사기도박, 함정. 물론 진부함도 필요하다면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정도 진부함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사건이란 점에서 볼때 너무 흔하다는 단점이 있을 뿐 큰 흠은 아니다. 사실 그보다 더욱 이 영화를 진부하게 만드는 요소는 캐릭터의 문제다. 

현실속의 인간과 이야기 속의 캐릭터는 다르다. 특히 장르영화속 캐릭터들은 더더욱 다를 수 밖에 없다. 영화 속 캐릭터들이 현실의 인간들처럼 다차원적이며 복잡한 존재로 드러나는 것은 단순히 관객들에게 인간적인 동조를 얻기 위한 장치로서 기능할 뿐이다. 터미네이터의 인간적인 면모가 관객들과의 교감을 높이기 위한 장치인 것처럼.



결국 영화속 캐릭터는 인간의 복잡다단한 모습들중 그 영화속에 필요한 부분을 극대화해서 보여주는 것이다. 반지의 제왕의 프로도가 민폐라는 측면이 강조된 캐릭터인 것처럼. 사실 그 캐릭터 덕분에 영화의 긴장감과 안타까움이 고양되었을 뿐만 아니라 일부 남성관객들에겐 짜증과 역장이 무너져 내리는 갑갑함까지 불러 일으키고야 말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많은 남성들이 "야! 이 색희야! 반지를 날 줘! 그냥 내가 가지고 갈께!" 라고 소리지르게 만들었다. 나역시 마찬가지고 

그런데 이 영화 트럭의 캐릭터들은 영화 내내 우왕좌왕이다. 처음 자기가 태운 형사가 사실은 연쇄살인범임을 알게 되는 장면을 보자. 잠깐 들른 주유소의 화장실에 붙은 수배범 전단을 보고 유해진은 그 사실을 처음 알아 차린다. 그런데 뒤이어 진구가 화장실로 들어선다. 그 찰나의 와중에 유해진은 화장실에 붙은 전단을 떼어내고 몸을 숨긴다. 이 대목에서 가만히 생각해 보자. 그런 상황에서 자기가 살인범의 정체를 알아차렸다는 것을 틀킬지 몰라서 전단을 떼어낸다는 것은 사실 순간적인 판단력이 엄청나게 뛰어난 인물이 아니면 쉽지 않은 행동이다. 

이 대목까지만 해도 난 이 영화가 평범한 소시민이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 처하자 자신도 잊고 지내던 능력을 깨우쳐 가는 영화.그리고 목적지로 가기 위해 트럭과 운전사가 필요한 연쇄살인범과 트럭뒤에 실린 시체를 유기하기 위해 트럭을 벗어날 수 없는 운전사, 이 얼마나 긴장감넘치는 설정인가. 그런데 그런 번득임은 그 장면이후로 사라진다. 간혹 몇몇 장면에서 잔 대가리를 굴려보기도 하지만 별무신통이다. 

그렇다면 애시당초 영화의 목적이 그런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말하자면 잔인한 연쇄살인범을 강조하기 위한 영화란 말인데 그런 캐릭터라고 보기엔 허술하다. 진구의 연기는 꽤 뛰어나지만 이미 캐릭터가 반편이라 연기가 살아날 수가 없다. 어쩌면 남조선의 이른바 공포 영화나 서스펜스 영화들이 성공하지 못하는 가장 주요한 요소가 이때문인지도 모른다. 

연쇄살인범이란 단어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이들은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인간의 사고방식으론 이해하기 힘든 가치관을 소유하고 있다. 따라서 세상과 소통하기 힘들 수밖에 없고 그 마찰이 계속되다 보면 결국 고립될 수 밖에 없다. 그 과정이 세상에 대한 증오로 나타난 것이 극단적인 범죄들이다. 그런데 남조선 영화속의 이 캐릭터들은 솔직히 너무나 인간적이다. 우습게도 바로 그 때문에 설득력이 떨어지는 거다. 

영화속에서 연쇄살인범이 찾아가는 것은 자신을 인간으로 대접해 주었다고 믿은 정신과 여의사다. 그런데 연쇄살인범이란 캐릭터가 그런 인간적인 교류에 집착한다는 건 솔직히 이해하기 어려운 설정이다. 그 정도라면 사실 단순한 강박증적인 증상에 불과하지 않을까? 그런 인간이 연쇄살인을 저지른다는 건 더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설정이고.

이 영화는 참신한 설정에서 출발였으나 캐릭터 구축에 실패한 채 사건들만 나열한 영화가 되어 버렸고 결과적으로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인지조차 알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그래서 유해진이 딸과 약속했던 바닷가 나들이를 나온 장면이 엔딩으로 떠오를 때 쯤이면 과연 내가 무슨 영화를 본 것인가하는 심각한 의문이 떠오르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