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ki

명절 연휴 영화 순례 2편 <김씨표류기> pt.2

The Skeptic 2009. 10. 12. 02:52

"사루비아, 짜장면 그리고 희망"


일백번 고쳐 읽어도 저 단어조합은 남의 옷을 옷을 빌려 입은 것처럼 어색하다. 남자김씨가 백년만에 맛보는 것 같다던 바로 그 사루비아꽃 꿀, 여자 김씨가 엄청난 용기를 내어 배달시킨(!) 짜장면을 돌려 보내는 남자 김씨, 그리고 그의 대사 '짜장면은 희망', 한강을 오락가락 하느라 다리에 배긴 알마냥 퉁퉁 불은 짜장면을 거대한 희망이라 부르며 맛을 보는 여자 김씨, 그리고 또 그의 대사 '희망의 맛이 분명합니다'


영화감독도 사람이다. 개떡같이 말해도 쑥떡같이 알아 듣는 사람은 정말 얼마 없지만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강조할 필요는 없을 텐데 중언부언 하는 걸로 봐선 이 단어조합에 그리 녹록치 않은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볼 수 밖에 없다.(주1) 그렇다면 몇 가지 힌트가 되는 장면을 돌아 보자.


영화 서두에 한강에 투신자살을 시도한 남자 김씨가 목을 매 자살을 시도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갑자기 배가 아파온다. 참 애석하고 안 어울리게도 목을 매 자살하려는 바로 그 순간,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의 가장 큰 욕망인 생존욕망을 스스로 끊어내려는 엄청난 결정을 내린 바로 그 결정적인 순간에 말이다. 그런데 더 기가 찬 건 이 인간 일단 볼 일부터 먼저 보고 그 후에 마저 죽자고 든다. 죽음과 볼 일중에 볼 일을 선택했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일까? 그건 다름아닌 '지금 바로 여기에서 내게 벌어지는 가장 시급한 일'이다. 분명 인간에게 죽음이란 엄청난 사건이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죽음을 눈앞에 둔 인간이기에 그렇다. 꿈에 할아버지가 등장하여 당장 내일 죽을 것이라고 알려준 사람이거나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몹쓸 병에 걸린 사람에게 가장 시급한 일은 바로 죽음일 테니까. 결국 대개의 경우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일상 그 자체이지 그 일상속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일들의 우선순위는 아니다. 비록 그 일상의 리스트안에 죽음이 들어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주2)


짜장면이 그에게 혹은 우리 모두에게 희망일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이젠 심심풀이 껌만큼이나 우리에게 너무나 흔해져 버린 바로 그 짜장면, 그것이 상징하는 바가 바로 일상인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가 새침하게 버리고 간 올리브 짜파게티 봉지와 스프를 찾아내고 그것으로 짜장면을 만들어 먹고 싶다는 욕망이 집념으로 변하는 바로 그 순간 짜장면은 희망이란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면을 얻기 위해 일군 밭에 줄 퇴비 마련을 위해 건강한 똥이 많이 필요하고 그런 이유로 건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일상을 정상적으로 영위하는 이들이 가지고 있는 상식인 것처럼.


그렇다면 여자 김씨에겐 왜 희망일까? 짜장면이란게 그렇다. 가벼운 마음으로 전화 한통화 걸어 배달시켜 먹기엔 부담없지만 집에서 만들어 먹자면 이상한 음식이다. 그래서 은둔자에겐 더더욱 곤란한 음식이다. 일단 타인에게 전화를 걸어 일상적인 의사소통을 해야 하며, 배달온 이와 얼굴을 맞대고 일상적인 대화(How are you? Fine. Thank you. and you?같은) 를 나누어야 한다. 심지어 그 짜장면도 자기가 먹을 것이 아니라 남에게 보내야 하는 선물이라면 난이도가 급속히 올라갈 수밖에 없다. 여자 김씨가 그 일을 시도한다는 것 자체가 인류의 달착륙만큼 의미있는 소통인 셈이다. 물론 그 첫 시도는 외계생명체에게 리플을 달러 나가는 것이었지만. 


짜장면 이야기는 이쯤 하고 다음은 사루비아. 사루비아는 이제 보기도 힘들어졌지만 나도 '아주 어린 시절'에 그 사루비아 꽃의 꿀을 빨아 먹어본 기억이 있다. 보고도 먹지 않게 된 것은 나이가 들면서다. 더 이상 신기하지도 않고 남들의 이목을 끌지도 모를 그런 일을 하기엔 스스로도 힘들어져 버린 후부터, 결국 다시 또 불어버린 나이때문이다. 굳이 사루비아가 아니어도 잠시나마 나이를 거스르게 만드는 그런 것들은 많다. 이 영화에선 그런 의미로 사루비아가 등장하고.


그리고 남자 김씨가 그 사루비아를 빨아먹는 상황이다. 자살을 하려다 말고 일단 급한 용무부터 해결하고 있는데 사루비아 꽃이 눈에 들어온다. 일을 보다말고 엉거주춤 오리자세로 사루비아를 향해 다가가고 또 그 자세 그대로 꿀을 빨아 먹는다. 그저 단순히 재미를 주기 위한 장면일 수도 있다. 그런데 내겐 조금 다르게 보였다. 그 장면에서 그가 하는 일은 먹는 것, 싸는 것, 우는 것이다. 어디서 많이 본 행동아닌가? 그렇다 영락없이 갓난쟁이들이 하는 일이다. 섬에 표류한 그가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될 것임을 암시하는 장면이다. 그리고 어떤 이유로든 살기를 결심하게 된 순간 희망은 다시 시작되는 법이다. 


물론 대부분의 희망은 여전히 부질없지만...



주1)

생산이 아닌 평을 하는 입장이 이래서 좋다. 이미 정해진 몇몇 룰에 따라 핵심을 파악하고 따지고 들기만 하면 된다. 마치 토익 시험같다. 토익시험을 위한 공부는 영어공부가 아니라 토익공부인 것처럼. 물론 생산을 하는 이들은 또 같은 이유로 평보다는 생산이 더 좋고 편할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주2)

'죽을 힘이 있으면 그 힘으로 살라'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다. 딱 그 고비만 넘기고 나면 가장 시급한 일상속의 일이 죽음이 아닌 다른 것으로 채워질 테니까. 단 그 자살의 원인이 엄청난 심리적 트라우마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런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부추김이 아니라 그에 대한 깊은 이해니까. 중요한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타인들의 사정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일 게다. 나이가 들면 알게 된다고들 하던데 경험해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다. 외려 외국영화들 속에 등장하는 인정머리없고 이기심에 가득찬 고약한 할망구들이 더 현실적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