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ki

[거북이 달린다] 매매춘에 대한 소고

The Skeptic 2009. 11. 8. 02:34

영화 '거북이 달린다'를 보면서 우스우면서도 씁쓸했던 대목 하나. 조필성이 용배를 데려다 함정수사를 벌이는 장면과 포주를 잡아서 심문하기 전 장면. 그러니까 매매춘(주1)을 희화화하는 장면이었다. 

 

그 장면에서 매매춘 여성 역을 맡았던 배우의 연기가 너무나 능청스럽고 섹스 장면에서 보이는 남녀간의 지위역전 현상이 나름 통쾌해서 웃고 넘어가긴 했지만 그래도 불편하긴 했다. 매매춘이란게 그렇게 희화해도 좋을 만큼 가벼운 행위던가? 그렇다고 매매춘이 능지처참을 당해야 할만큼 중한 범죄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단지 회화화가 가능할 정도로 가벼운 행위이던가 아니면 능지처참을 당해야 할 정도로 중한 범죄이던가 둘중의 하나만 했으면 좋겠다는 것과 그 기준을 파는 쪽이나 사는 쪽이나 똑같이 적용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몸을 사는 인간들에겐 봄처럼 한없이 가벼운 행위이면서 정작 몸을 판 이들에겐 세상에 다시 없을 중한 범죄인 양 취급하는 것이 현실아니던가. 심지어 어떤 꼬추들은 '공급이 있으니 수요가 생기는 것 아니냐'는 천하에 배워 처먹은 것 없는 불한당같은 언사를 씨부리던가. 아니면 노벨 경제학상에 빛날 새로운 경제학 이론을 창시하지 않던가. 

 

애시당초 남녀간의 애정 확인행위를 대단한 범죄인 양 취급하는 것 부터 잘못된 시작이었고, 남성들의 소유와 영역확인 행위의 대상에 여성을 포함시키는 남근주의, 성인남성위주의 가부장제도 잘못된 것이고, 남성들의 성욕은 자랑스러운 행위인 양 치부되면서 여성의 성욕은 터부시하는 것도 잘못이다. 

 

영화속의 매매춘에 대한 희화화가 앞서 말한 내 의견과 비슷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매매춘을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을 유도하기 위한 정교한 장치라고 보는 것은 조금 무리한 합리화다. 오히려 현재 남조선에서 매매춘이 무의식적으로 인식되고 다루어지는 방식에 대한 발현이라고 보는 편이 더 타당할 것이다. 그래서 난 원한다. 그냥 매매춘을 가볍게 바라봐주던가 그게 불가능하다면 적어도 사고 파는 이들을 동등하게라도 대우해주었으면 한다. 

 

궤변의 달인들인 어떤 불학무식한 꼬추들이 매매춘을 언급할때 흔히 사용하는 단어 '필요악'은 두 개의 한자어로 만들어진 단어지만 남조선 국문법상 분명히 하나의 뜻을 가진 하나의 단어다. 사는 이들에겐 '필요'쪽에 방점이 찍히고 파는 이들에겐 '악'쪽에 방점이 찍히는 이중의 의미를 갖는 단어가 아니다.  




주1) 예전에 매춘이라 흔히 사용되었던 단어는 그 자체로 분명히 파는 쪽의 책임을 무겁게 지우기 위한 조어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적으로 매매춘에 종사하는 여성들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할 뿐 아니라 전체 여성들에게도 자신의 몸에 대한 스스로의 통제와 장악이란 기본적인 인권조차 유린하는 의미를 양산하는 단어다. 고로 매춘이 아니라 매매춘이 정확한 표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