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먹고 바람똥

<기억의 방식>

The Skeptic 2009. 11. 30. 14:59

일전에 동물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어느 영명한(?) 침팬지에 대한 실험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내 관심을 끈 실험은 그 침팬지의 뛰어난 기억력에 대한 실험이었다. 짧은 시간동안 화면에 숫자를 보여주고 그 위치를 기억해내는 실험이었는데 어지간한 인간들이 모두 곤란함을 겪는 난이도에서도 이 침팬지는 아무 무리없이 문제를 풀어냈다. 문제는 그 사실을 마치 그 침팬지의 지적 능력이 상당하다는 양 취급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그 견해는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침팬지에겐 그 기억방법이, 더 정확히 말하면 침팬지와 같은 지능지수와 환경에서 사는 존재에겐 더 중요했기에 발달한 것 뿐이다. 침팬지가 살아가는 환경은 매우 단순하다. 구분해야 할 것이 많지 않다. 위험한 것/안전한 것, 먹을 수 있는 것/먹을 수 없는 것 하는 식이다. 그러나 그 구분은 생존에 필수적이다. 따라서 빠른 순간에 눈앞에 보이는 것들을 파악하고 그에 대한 판단을 내릴 필요가 있다. 당연히 사진을 찍듯 기억하는 방식이 훨씬 유리하고 그 쪽으로 발전한 것일 뿐이다.

 

반면 인간이 살아가는 환경은 침팬지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다. 인간에게 더욱 필요한 능력은 단순 기억이 아니라 그 사건들간의 인과율과 수열을 파악하는 것이다. 어떤 사건이 어떤 원인때문에 발생하고 그것은 또 어떤 사건의 원인이 될 것인지, 그리고 어떤 사건들증 어떤 것이 좀 더 시급하고 중요한 것인지 서열을 매기는 것이 중요하다. 인간에겐 그런 능력이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다. 기억력이 나빠서 좋을 것은 없겠지만 그렇다고 사물이나 사건에 대한 가치판단없는 단순 기억능력, 구분능력이 더 중요한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침팬지에겐 그런 복잡한 삶이 존재하지도 않으니 당연히 필요하지도 않다. 만약 인간이 침팬지와 비슷한 지능과 환경에서 살아간다면 인간도 당연히 그런 능력을 갖출 것이다. 결국 지적 능력이란 그 존재가 처한 환경에서 가장 증요한 형태로 발전하게 마련이다. 그 중 어떤 능력에서 탁월한 기능을 보인다고 해서 그것이 뛰어난 지적 능력을 가졌다는 증거는 아니다. 같은 지적 능력들 속에서 서열을 매기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전혀 다른 능력을 비교한다는 것은 무리인 셈이다.

 

그렇다면 이 기준에서 볼때 과연 남조선의 교육은 어떨까? 인과율을 가르치고 있는가? 아니면 침팬지들을 양성하고 있을까? 난 침팬지 양성쪽에 한 표 던지겠다. 그것도 엄청난 경쟁을 시켜가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