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바! 그래 나 초능력자다!
사건 1
일하러 나가는 길, 지하철 역에 가기 위해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 길. 웬 말만한 그러나 고딩스러운 녀석이 담배를 피우며 내 앞을 걷고 있었다. 어느덧 담배를 다 피웠는지 담배꽁초를 바닥에 던진다. 그런데 두어 걸음만 더 걸으면 휴지통이 있다.
사건 2
버스 정류장, 일요일이라 버스가 많지 않아 늦어진다. 어디선가 불어오는 담배 연기 '이런! 어느 **같은 **가 버스 정류장에서 담배질을!' 훽 돌아보니 교회에 가려는 듯 성경을 겨드랑이에 끼우고 서서 담배를 피우는 내또래의 남자 색희. 뭐라 하진 않았는데 내 돌아보는 기세와 눈초리가 별로 곱진 못했던 듯, 한 모금 더 빨더니 끈다.
사건 3
일터로 향해 가는 지하철 안, 일요일인데 특이하게 사람들이 많다. 한 번의 환승 역을 지나니 빈 자리가 거의 없다. 그리고 두 번째 환승역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더 많이 타고 일요일답지 않게 서서가는 사람들 숫자가 는다. 그리고 내 자리 맞은 편 우측 출입구 쪽에 아이를 업은 젊은 엄마 하나와 가방을 둘러맨 남편. 아무도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 별 수없이 일어서서 젊은 엄마를 불러 앉힌다. 내 자리 근처와 그 젊은 엄마 주변엔 어딘가 나들이라도 가는 듯 산뜻하게 차려입은 젊은 처자들이 재잘대고 있다.
아이티에 강진이 일어나서 사람들이 수도 없이 죽고 실종되었으며 구호품도 없어서 약탈이 자행되고 있단다. 사람들은 그 뉴스를 보고 듣고 읽으며 안타까워 한다. 그런데 두어걸음만 더 걸으면 휴지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길바락에 담배꽁초를 내던지는 그 무신경함, 간접흡연이 타인에게도 해로운 것이니 다중이 모이는 장소에선 자제하라는 상식을 무시하는 것, 누가 강요하는 것은 아니지만 갓난 쟁이를 안고 있는 엄마가 있으면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는 것쯤은 당연한 것 아닐까?
그 말만한 고딩 녀석이나 잘 차려입은 처자들도 오늘 친구들을 만나서 아이티 지진 이야기를 할 것이며, 교회에 가면 당연히 아이티를 위해 기도하겠지. 그러나 그들이 진정으로 아이티 사람들에게 닥친 비극에 대해서 안타까워 할까? 난 그들이 진심으로 아이티를 걱정했을 것이라곤 믿지 않는다.
물론 이런 식으로 판단하는 건 그다지 좋은 방법이 아니다. 왜? 비현실적인 판단 패턴이기 때문이다. 내 판단 기준이 옳기 위해선 인간에겐 '일관성'이란 것이 존재한다고 가정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은 결코 그런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일관성있는 가치관을 가진 존재라기 보다는 차라리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존재와 같다.
아이티의 비극에 눈물을 쏟을 지언정 기초질서를 지키지 않는 것과 도덕적 관습을 지키지 않는 것엔 아무런 관심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존재, 그게 인간인 것이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머나먼 이국 땅에서 벌어진 비극에 대해선 ARS 전화 한 통화 하나 밖에 할 수 없는 자신의 현실에 안도하며 마음편하게 걱정해줄 수 있지만 당장 내 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선 내 보잘 것 없는 이익이 침해당할지 몰라 애써 무관심한 척 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다.
모더니즘이 잘못된 길을 걸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고 고전 자본주의가 삐뚤어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다.
P.S.
'너는 얼마나 잘 나서'란 말은 하지 마라. 나도 하기 싫다. 다만 난 그들에 비해 가까운 미래를 예측하고 그것에 대응하는 <초능력>이 조금 더 뛰어난 것 뿐이다. 담배를 끄면 휴지통에 버려야 하고 그러려면 휴지통이 어디 있는가를 알아야 하고 잠시 둘러보니 바로 두 걸음 정도 앞에 휴지통이 있더라는 사실을 예측할 수 있는 실로 놀라운 <초능력>말이다. 그리고 남들이 하지 않으니 내가 양보할 뿐이다. 그 젊은 엄마가 바로 내 눈앞으로 다가왔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