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ki

[레저베이션 로드] 우리는 누구를 혹은 무엇을 용서하는가?

The Skeptic 2010. 2. 25. 01:24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감정이다'


누군가 말했었다. 난 동의한다. 이성이 결여된 시대를 탓하지만 사실 이성이 필요한 이유 역시 감정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대부분인 탓이다. 용산참사 소식을 듣고 어이없음과 분노를 느끼지 못 했다면 남조선에서 파시스트 정권의 비호아래 벌어지는 폭력적 재개발의 폐해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어떤 감정이 이성적인 판단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늘상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감정이 감정의 차원에서 머무르는 것은 그 자체론 사회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으며 결국 자신에게도 아무런 의미나 영향도 없음을 지적하고 싶은 것 뿐이다. 


그런데 만약 그 감정이 극도의 '상실감'이거나 '죄책감'이라면 어떨까? 이 영화는 그것에 대한 이야기다. 뺑소니 교통사고로 한 아이가 사망한다. 아이를 잃은 가족들은 슬픔과 분노에 휩싸이고 아버지는 그 뺑소니 운전자를 잡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인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가족들의 관계는 서서히 벌어지고 어긋난다. 가족이기에 같은 비극을 겪었기에 서로에게 최선을 다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뺑소니 운전자는 사실 도망칠 마음이 전혀 없었다. 단지 그 찰나의 순간 그를 사로잡은 것은 두려움이었고 그 두려움에서 헤어나오기 위해 그저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에게도 죽은 아이와 비슷한 또래의 지켜야 할 아이가 있었다. 


이런 경우는 사실 매우 흔하다. 다만 사람의 목숨이 왔다갔다할 정도로 중하지 않을 뿐이다. 예를 들자면 꽤 절친한 누군가에게 이자도 없이 돈을 빌려주었는데 그의 사정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아 거의 떼이다시피 한 경우가 있을 것이다. 액수에 따라 대응은 조금 달라지겠지만 어찌 되었건 결과적으로 이것은 일종의 사기다. 그러나 그런 일들 중 과연 몇 개나 버젖이 사기사건이란 꼬리표를 달고 법원으로 달려갔겠는가? 정확한 것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꽤나 소수일 것이다. 


이처럼 인간 감정의 진동폭은 '대상과의 관계'에 의해 정해진다. '그/그것이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가?' 한 지붕아래에서 잠이 들며 같은 식탁에서 같은 밥을 먹는 사람들조차도 이 차이는 엄연히 존재한다. 가족의 부재, 그것도 느닷없는 비극으로 다가온 가족의 부재가 남은 이들을 슬프게 할뿐 아니라 힘들게도 만드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똑같은 무게의 슬픔이란 건 존재할 수 없으며 그 상실감을 해소하는 방법 역시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이런 류의 영화들이 대개 그러하듯이 이 영화 역시 '용서'라는 주제를 위해 달려간다. 그러나 흔히 말하는 그런 용서는 아니다. 만드는 영화마다 더할 나위없는 걸작이었던 거장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처럼 용서란 행위에 대해 문제적 시각을 보인 것은 아니지만 방향만큼은 비슷하다. 용서란 결국 자신을 용서하는 것이다. 상실감과 자책감을 해소하기 위해 다른 것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정면으로 바라보라는 것이다. 복수가 이미 벌어진 사건을 없는 일로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며 자책감이 숨긴다고 숨겨지던가. 숨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영화 '머시니스트'를 보길 권한다. 자신을 속이는 것만큼 힘든 일은 세상에 없다. 


물론 영화가 말하는 용서의 의미에 대해 난 공감한다. 그러나 만약 나에게 그런 일이 닥친다면 그렇게 행동할 수 있을 것인가는 여전히 의문이지만. 게다가 난 아직 용서와 망각을 구분하지 못 하는 인간이 되기보다는 차라리 복수를 꿈꾸고 자책감을 숨기려고 노력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거듭 강조하지만 이런 나의 생각이 옳은 것은 결코 아니다. 



p.s.

아... 오랜만에 보는 제니퍼 코넬리... 참 언제 봐도 아름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