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협한 안보의식은 비극을 낳을 뿐이다.
시국이 시국이다 보니 하게 되는 안보 이야기.
안보란 궁극적으로 한 국가의 안녕을 보장하기 위한 행위다. 이건 매우 포괄적인 개념이다. 스위스처럼 중립국가가 되는 것 역시 안보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능한 한 가지 선택일 수 있다. 물론 일반적인 경우 군대와 관련된 문제는 중요하다. 다만 군대의 문제가 모든 것을 확정짓는 결정적인 요소는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안보에 있어서 더욱 결정적인 문제는 군대라기 보다는 외교인 경우가 더 많다.
같은 의미에서 이른바 '주적'이란 개념 역시 정의가 가능하다. 국가의 안녕을 위협하는 요소가 단순히 한 가지 요소인 경우는 사실 그리 흔치 않다. 단지 우리의 경우 그 중 하나가 도드라질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안보가 포괄적인 개념인 한 '주적'이란 단어는 그다지 적절치 못한 용례다. 특수한 상황이 도드라 지더라도 일반적인 경우를 넘어서는 영향력을 갖는다고 정의하는 것은 사실 매우 편협한 시각을 낳고 대중화할 우려가 높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렇다. 마치 북조선과 친한 국가는 우리의 적인 양 판단하게 만드는 효과를 낳는 것처럼.
적의 적은 그냥 적의 적일 뿐이지 내 편인 건 아니다. 결국 '주적'이란 개념을 상정하는 것은 용례로 보나 현실적인 영향력으로 보나 득보다는 실이 더 큰 행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조선은 '주적' 개념을 가정하는 것에 목숨을 거는 인간들이 있다. 그리고 언젠가 설명한 것처럼 그들 중 일부는 그런 편협한 시각의 대중화를 통해 정치적, 경제적 실익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나머지는 이미 그 시각에 경도되어버린 인간들이고.
천안함 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북조선의 공격인지 아니면 다른 요소때문인지 아직 명확하게 드러난 것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방장관이란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응징해야 한다'고. 응징할 대상이 명확하지도 않고 심지어 존재하는지조차 확실하지 않은데 어떻게 응징을 하겠다는 것인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우려스러운 것은 이런 논리도 근거도 없는 시각을 찌라지 언론들과 딴나라당, 극우 파시스트 단체들이 나서서 조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다 만약 좌초된 것이라고 증명되면 어떻게 할 텐가? 특수한 상황으로 몰아 붙이고 그에 합당한 대응, 이 경우 군사적 대응까지 하고 났는데 그것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고 나면? '대량살상무기'를 핑계로 이라크를 침공했지만 결과적으로 대량 살상무기는 발견하지도 못 했고 죄없는 자국민 청년들의 희생만 늘어나는 이라크 전쟁 꼴이 된다면 그 책임을 누가 질까? 아직 명확한 근거도 없는 데 북조선의 소행임을 확언하는 수많은 블로거와 네티즌들이 그 책임까지 지려고 들까? 아니 책임지겠다고 한들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가?
당연한 이야기지만 난 그 방법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엉뚱한 희생양을 낳을지도 모를 행위에 무책임하게 동의하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