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트리] 무엇이 중요한가?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는 이스라엘과 범아랍권이 긴장관계에 놓여있는 중동에서도 대표적인 지역이다. 관심은 가지고 있지만 그 곳이 어디쯤인지 정확히 알진 못한다. 이 영화 레몬트리는 그것에 대한 영화다. 아버지에서 그 딸에 이르기까지 50년간 아무 문제도 없었던 레몬 농장 옆으로 이스라엘의 국방장관이 이사를 온다. 물론 그들이 이사온 곳은 이스라엘 정착촌이고 레몬농장은 팔레스타인 지역이다. 그들은 당연히 테러리스트의 공격을 우려하며 레몬 나무들을 잘라내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을 막으려는 농장 여주인인 살마의 이야기.
재판이 어떻게 진행될 것이며 결론이 어떻게 될 것인지는 사실 그리 중요치 않다. 아니 중요하다고 해도 이미 그 결말은 우리의 예상 범위안에 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영화의 배경이 이미 보여주고 있으니까. 50년동안 아무런 불상사도 일어나지 않았다. 일어난 적도 없고 앞으로 일어날 가능성조차 애매한 불상사를 걱정해야 하는 이유는 한 가지다. 이스라엘 정착촌에 국방장관이 이사왔다는 것 뿐이다.
농장의 여주인인 살마는 그 자체로 팔레스타인이 처한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아무 문제도 없던 곳에 어느 날 갑자기 이스라엘이란 나라가 들어서고 갈등은 시작되었다. 국방장관은 이스라엘의 입장을 그대로 대변해준다. 그는 팔레스타인의 테러로부터 이스라엘의 안녕을 지켜야 한다고 믿는다. 물론 근대 역사를 보면 중동지역엔 이스라엘이란 나라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팔레스타인 지역을 점령하면서 구축해 나간 정착촌과 다를 바 없는 존재다. 그러나 그는 그 문제에 대해 무관심하다. 파티에 사용할 레몬이 없자 자신의 소유도 아닌 이웃 집 레몬을 함부로 따다 써도 괜찮다고 여길 정도로.
가장 중요한 인물은 바로 국방장관의 아내다. 그는 자신의 남편의 행위를 대신해서 미안함을 표시한다.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점령자로서 도착했지만 점령자로서 행세할 수 없었던 사람. 그는 아무런 선택을 할 수가 없다. 남편을 배신할 수도 없지만 부당한 대우를 받는 농장 여주인을 외면할 수도 없다. 결국 그 녀가 마지막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남편과 헤어지는 일 뿐이다. 이해 당사자가 아니면서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남겨진 유일한 선택지가 이런것은 아닐까? 물론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진 않다. 어떤 식으로든 이해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이들이 많으니까. 그 때문에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삶에 대해 여전히 무관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 국방장관의 아내는 떠나고 이스라엘 정착촌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콘크리트 분리장벽이 세워지고 그 너머 레몬농장엔 장벽에 가까운 레몬나무들의 절반이 밑둥만 남긴채 잘려져 있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결론일까? 이 결론 앞에서 행복하다고 안심이 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법원의 판결이 내려지고 난 후 농장 여주인이 살마의 말.
"이 판결은 저를 우롱하는 처사입니다."
지금 팔레스타인이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 아닐까?
p.s.
간혹 영화에 대한 평이 영화 그 자체보다 훨씬 못 미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어떤 주제를 잡아 어떤 식으로 글을 써도 도대체 그 영화의 진면목을 표현할 수 없을 것이란 느낌이 들게 만드는 영화. 이 영화가 그렇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