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사기와 집단 지성, 이문열
지적 사기와 집단 지성, 이문열
굳이 이문열이란 이름을 끌어 들이고 싶진 않다. 그에 대한 내 평가는 이미 '지적 사기'란 네 글자로 오래전에 끝나버렸기 때문이다. 그가 뭔 소리를 하든, 뭔 글을 쓰던 이젠 관심조차 없다. 그저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걸 당연한 것으로 인정하는 많은 현명한 노인들과는 달리 자기가 이해못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잘못된 것이라고 똥고집을 피우는 사실상 지적으로 매우 편협한 꼴통 늙다리에 불과하니까.(주1)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을 집단지성이 아닌 집단최면이라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새로운 정의를 주창한 탓에 그냥 관심이 필요한 늙은이인 것 같아 이름 한번 불러줘 봤다.
집단지성은 인터넷의 한 부분을 정의하는 것에 불과하다. 인터넷을 정의하기란 사실 거의 불가능하다.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일들은 사실 현실세계에서도 고스란히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인터넷을 정의하기 위해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살이를 정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알다시피 그건 불가능하다. 단지 몇몇 장면들을 포착하여 해석하고 분석하여 <제한적인 의미의 정의>를 내릴 수 있을 뿐이다. 집단지성 역시 그런 측면의 정의다.
만화 이야기를 하나 해볼까? 내가 지금도 굉장히 알쏭달쏭하게 생각하는 만화 '20세기 소년'에 보면 어린 아해들이 세계를 위협하는 악과 그에 대항해 싸우는 정의의 편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장면이 끊임없이 플래쉬백으로 등장한다. 사실 이 만화의 주제가 그것이니까.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한 아이가 대강의 줄거리를 늘어놓고 다른 아이들이 거기에 살을 붙이고 이리저리 덧대어 '예언서'라는 것을 만든다. 심지어 이야기의 갈등구조을 이끌어가는 정체가 모호한 '친구'라는 존재 역시 그 이야기 만들기에 한 몫을 할 뿐 아니라 거기서 파생된 '신예언서'를 만들기까지 한다. 집단지성? 별 거 아니다. 이런 거다. 어떤 의미로든 쿵짝이 맞아 떨어진 이들이 하나의 주제를 위해 생각과 아이디어를 모아가는 것.
그렇다면 집단지성엔 순작용만 있을까? 아니 현실세계가 그렇지 않듯이 집단지성역시 부작용도 존재한다. 특히 연예계나 스포츠계에서 벌어지는 단순한 사건들이 큰 사건이 된다든지, 이른바 네티즌 수사대라든지 하는 것들이 그런 것이다. 수용자 입장에서 볼때 부작용의 원인은 분별력 결핍이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1차적인 원인이라면 이 나라가 그런 것을 가르치지 않고 있으며 나이든 인간들조차 그런 것들이 왜 중요한가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메이저 신문사라는 곳에서 몰상식한 기사와 사설들을 싸지르고 있고 공영방송이란 KBS에선 사적인 보복을 위해 9시 뉴스를 이용해 먹기도 했다.
인터넷은 어느 날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졸라게 새로운 그 어떤 것이 아니다. 그저 인간들이 실제로 살아가는 현실세계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되는 곳일 뿐이다. 이 나라의 지적 사기꾼들은 대관절 언제쯤이나 되어야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인터넷이라는 도구의 문제로 치부해 버리려는 아둔함을 버릴 수 있을까?
...개가 '야옹'이라고 울기를 바라는 게 더 빠르겠다.
주1)
그에 비하면 이외수는 얼마나 솔직담백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