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먹고 바람똥

디자인이란...

The Skeptic 2010. 7. 17. 02:09

디자인 서울 계획에 대해 서울대 미대생들이 전공을 살린 폭로전을 벌였단다. 이미 오씨의 형님 뻘인 죄박이가 서울에서 시장질하던 시절 청계천 복원이란 이름으로 청계천을 새롭게 만든 것과 똑같은 짓거리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즉 말만 복원이고 디자인이지 실상은 건축업자들을 위한 개발계획일 뿐이다. 

 

대저 관광으로 유명한 국가들이나 도시들은 나름의 특성이 있다. 유럽은 과거부터 전해 내려온 유적이나 전통을 잘 보존함으로서 볼 거리를 만든다. 새롭게 지어진 구조물들도 많지만 그 속을 채우고 있는 것들은 오래된 것들이다. 그런 케케묵은 것들을 뭐하러 보존하고 지키려 하는 걸까? 단순하다. 그것들은 겉모양이 아니라 그 안에 역사와 이야기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역사와 이야기들은 지금까지도 서양 문화속에서 새롭게 변주되고 재탄생되고 있다. 오래된 이야기들이 문화적 영감의 바탕이 되고 창조성의 원천이 되어주는 것이다. 

 

난 개인적으로 일본 영화나 아랍쪽 영화들을 좋아한다. 물론 다른 이유들 때문이긴 하지만 그래도 한 가지 공통점이 존재한다. 일본 영화에서 자주 보이는 작은 도시들 특유의 정취, 그리고 아랍 지역 도시들의 그 산만하면서도 삭막해 보이는 분위기들이 좋다. 말하자면 영화속에서 그 나라만의 고유한 색감이나 질감이 넘쳐나는 도시들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남한엔 그런 정취들, 남한 특유의 분위기가 묻어나는 도시가 있을까? 있다면 어떤 형태일까? 

 

심은하와 한석규가 주연한 '8월의 크리스마스'란 영화가 있다. 영화도 참 마음에 들었지만 내가 가장 좋아했던 건 영화의 배경이 된 도시와 골목들, 길거리들, 건물들이었다. 사연을 전해 듣지 않으면 무심코 넘어갈 수도 있을 법한,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사랑 이야기를 담아내기에 참 적당한 배경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의 주 촬영지는 서울의 변두리 지역이 아니라 군산이다. 이미 서울만 해도 영화속에 나오는 것처럼 한가로운 풍경을 간직한 곳이 이젠 사라지고 없다는 말이다. 

 

새롭게 조성된 도시나 건물일지라도 심지어 그것이 다 똑같은 모양의 성냥갑같은 아파트 단지일지라도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면 사연들이 태어나고 이야기가 만들어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30년도 채 채우지 못하고 개발과 돈벌이를 위해 허물고 그 안에서 삶을 영위하던 이들을 뿔뿔이 흩어지게 만들면 사연도 이야기도 스며들 틈이 없다.

 

사연과 이야기가 없는 디자인?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시각적 만족만을 추구하는 것이 디자인이던가? 진정으로 디자인이 그런 것이라면 난 디자인따위 포기하고 그냥 실용성이나 추구할란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실용성에도 이야기는 존재하지 않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