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racism

민족주의, 그 양날의 검

The Skeptic 2010. 8. 6. 02:51

언젠가 한번 말했지만 민족이란 개념은 자연계에 이미 존재하는 어떤 차별적인 요소들에 의해 규정되는 자연과학적인 현상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필요에 의해 특정한 사실을 특정한 목적에 맞게 발굴해서 재가공한 것, 말하자면 사실보다는 신화에 더 가까운 개념이다. 

 

산업혁명으로 인한 도시문명의 발달, 자본주의 발달, 공업화는 필연적으로 배타적인 경제력의 수급을 요구하게 되었고 그 결과 근대 국가가 탄생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경제적 요구만으로 근대 국가의 기틀을 갖추기는 무리였다. 그래서 이들은 국가라는 틀안에 거주하는 안정적인 노동력 공급처이자 소비시장의 역할을 하는 국민들의 의식을 하나로 모으기 위한 기제가 필요했고 그것이 바로 민족이란 개념이었다. 말하자면 민족이란 근대 국가보다도 더 늦은 발명품인 셈이다.

 

물론 이것은 일반적으로 유럽의 국가 탄생과 민족 개념의 차용이란 측면이다. 아시아, 특히 유럽의 식민지로서의 역사를 가진 아시아는 그와는 다른 측면이 존재한다. 그렇다고 해서 아시아 권이 유럽보다 훨씬 더 오래된 특별하고 차별적인 민족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단지 근대 국가의 형성이 자발적인 측면이라기 보다는 유럽 제국주의의 개입에 의해 이루어졌고 뒤이어 유럽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과정을 통해 민족이란 개념이 공고해졌다는 차이가 있다. 

 

조선(한반도에서 근대국가의 형성과 민족개념의 공고화는 아직 남한과 북한으로 나뉘어지기 전의 일이고 그 상태를 지칭할만한 정확한 명칭을 모르겠는 관계로 여기선 이렇게 쓰기로 한다)의 경우엔 그 과정이 유럽의 열강들이 아니라 제국주의 일본이었다는 점이 다른 점일 것이다. 

 

어느 모로 보나 민족이란 개념은 필연적으로 배타성을 띠게 된다. 이런 현상은 근대 국가란 개념이 무너지지 않는 한 계속 지속될 것이다. (유토피아를 꿈꾸었던 모든 이들이 무정부주의로 귀결될 수 밖에 없는 이유기도 하다) 그러나 근대국가가 무너지는 일은 현재로선 거의 상상하기 힘들다. 그리고 그런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하더라도 그건 엄청난 파국을 전제로 이루어질 확률이 높은 지라 마냥 반길수 만도 없다. 결국 지금 당장 우리에게 남은 선택지는 민족이란 개념을 얼마나 긍정적인 의미로 재가공해낼 것인가 하는 점이다. 특히 이미 뿌리깊은 단일민족 신화를 가진 우리에겐 굉장히 날카로운 양날의 검이 될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