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은 늘 시궁창

경실련의 한계

The Skeptic 2010. 8. 13. 14:57

경실련과 죄박이

 

경실련하면 그래도 십여년전엔 꽤 날리던 시민단체에 속했다. 그러던 것이 최근에 와선 그 위상도 많이 흔들리고 있고 이번에 죄박이 정권에 경실련 출신 인사들이 발탁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발탁된 인사들은 '친서민 정책의 진정성을 보았다'라는 식으로 이야기하지만 언제는 죄박이가 친서민정책을 주장하지 않았던 적이 있었던가를 돌아보면 별로 설득력은 없다.

 

비슷한 시기에 나온 뉴스 한 토막, 법제처장을 맡았던 이석연이 사임했단다. '약자에게만 준법을 강요하는 건 잘못'이란 말을 했단다. 난 이 인간을 볼 때마다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저런 말을 늘어놓을 정도의 안목을 가진 이인데 뉴라이트 전국연합 상임대표를 했었다. 더 우스운 건 이 인간이 경실련 사무총장 출신이란 거다. 비슷한 사례는 더 있다. 서경석 목사다. 이 인간도 한 때는 민주화 운동을 했다고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을 거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이 인간도 상당히 애매한 포지션을 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인간도 경실련 출신이다. 

 

이런 사실들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불행히도 경실련이란 이름은 이제 시민운동단체라는 범주에서 제외시켜도 무방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말이다. 난 그들의 일관되지 못한 가치관에 대해서 비판하고 싶지 않다. 물론 여기서 일관성이란 시간의 경과와 관련된 일관성이 아니다. 시간이 흐르고 세상이 변하면 가치관도 변하는 법이다. 그건 자연스러운 일이지 비난의 대상이 아니니까. 내가 의미하는 일관성은 그들의 형식주의와 내용의 불일치를 말하는 것이다. 

 

경제정의를 실천한다는 단체 출신 인사가 행정수도 이전을 통한 지방 경제 활성화에 대해서 수도이전은 위헌이라는 논리, 즉 자본주의적 시각에서 볼때 집중이 더 효율적이라는 매우 친자본주의 시각을 노정한다든지, 죄박이의 '친서민 정책의 진정성'운운하는 모습이라든지 하는 것들이다.

 

이런 일련의 사례들을 통해서 내가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이들 역시 남한 사회의 심각한 문제인 '분열증적 사고'라는 증상을 앓고 있는 사람들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앞서 몇번 언급한 것처럼 이른바 386 이전 세대들의 특징중의 하나다. 이석연이나 서경석 역시 김문수나 이재오와 똑같은 사고방식을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들이 속했던 단체인 경실련 역시 거기서 전혀 발전하지 못했다.

 

문제는 이런 '분열증적 사고 방식'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죄박이와 딴나라당은 다 알면서 구라를 치는 것이지만 이런 이들은 이게 앞뒤가 안 맞는 다는 걸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단순한 사기가 아니라 병적인 증상이라는 거다. 그래서 이들의 행보엔 거침이 없고 심지어 당당하기까지 하다. 그리고 또 전후관계를 잘 모르는 이들은 이들의 그런 모습만을 보고 근거없는 믿음을 갖는다. 그러나 잘 따져보면 그것 역시 그냥 구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