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이고 싶은] 그러나 그렇게 절박하진 않은...
'죽이고 싶은' 발상이나 상황설정은 참 좋다. 그런데 결국 한계라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단점'이 아니라 '한계'라고 굳이 말하는 이유는 저예산 영화이기 때문이다.(뭐 그렇다고 내가 영수증 확인해본 건 아니다) 영화 전우치에서 영화감독 역으로 출연한 배우가 말했다. '목은 성형이 안 된다냐? 필름이 초당 500원인데' 필름 값이 그렇다는 거고 배우에 스탭에 각종 장비들까지 걸고 넘어지면 억단위는 쉽게 넘어 가버리는 게 영화다. 디지털 기술이 발달했다곤 하지만 아직 디지털이 필름의 색감을 따라올 수 있는 건 아니고 안철수 님의 말마따나 IT산업이라 할 수 있는 특수효과는 일반적인 상식보다 돈도 많이 들고 노동집약형 산업이다. 배우 유해진과 천호진, 좋은 배우들이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유해진의 연기는 이제 매너리즘에 빠진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아니면 조연 배우와 주연 배우의 차이라고 해야 하나. 야구에서도 선발 투수와 중간 계투 투수는 피칭 스타일이 매우 다르다. 선발 투수는 긴 이닝을 버텨주어야 하기에 다양한 구질과 템포조절같은 게 중요하다. 반면 중간 계투는 짧은 시간 등판하기 때문에 그런 거 필요없다. 그저 자신있는 투피치 투수이기만 해도 된다. 유해진에게선 그런 분위기가 풍긴다. 다양한 구질보다는 자신있는 두 가지 구질로 승부보는. 결국 주연은 아직 무리인 건가? 천호진도 좋은 배우이긴 한데 역시 주연은 무리라는 느낌이 든다. 그렇다고 유해진과 같은 이유는 아니다. 연기력의 안정성이 떨어진다고 할까? 아니 지구력이 떨어진다고 할까? 그런 느낌이 든다. 한 영화안에서 뛰어난 연기와 그저 그런 연기를 동시에 보여준다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어떤 장면에선 최민식 뺨치다가 어느 장면에선 그저 TV 수목드라마 아니 일일시트콤에 나올법한 김빠진 연기가 튀어 나온다. 몰입했다 확 깨고를 반복하다보면 김이 좀 많이 샌다. 그래도 영화 자체의 발상은 좋다. 기억의 신뢰성 문제가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중심이라든지, 일시적으로 육체적 한계를 갖게 된 이들이 같은 병실이란 고립된 공간에 놓인다는 설정은 사실 그 자체로 상당한 기대감을 이끌어 내고야 만다. 단지 문제라면 발상'만' 좋았다라고 할 부분들 역시 많이 눈에 띈다는 점이다. 특히 마지막 부분의 그 지나치도록 친절한 설명을 듣고 있으면 소년탐정 김전일(몇 편보고 때려쳤다. 다시 보라고 하면 죽어버릴 테다)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도 살짝 들면서 헛웃음이 나온다. 전체적으로 영화는 저예산 영화의 어쩔 수 없는 한계와 상당한 기대감을 갖게 만든 도입부를 지나 너무 친절해서 짜증이 나는 결말로 이어지는 대한민국 스릴러 영화가 갖고 있는 안 좋은 모양새를 많이 답습한 느낌이 든다. 이런 영화를 볼 때마다 느끼는 건데 대한민국의 많은 감독들이 '사람들이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못 알아 들으면 어떡하지?'하는 걱정을 하며 영화를 만드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일단 그런 걱정할 필요없다. 그리고 사실 좀 못 알아 먹으면 또 어떤가? 걱정때문에 방향성을 상실한 어줍잖은 포지션을 취하느니 일단 밀어 붙이고 결과를 기다리는 편이 더 낫지 않겠는가? 아니면 할리우드처럼 시나리오 공장제 시스템을 갖추던가 말이다. 영화를 분업화된 공장제를 통해 만들어낼 수 있을 정도로 산업화를 이루지도 못 했고 앞으로도 그 정도의 마켓을 갖고 있지 않은 나라의 영화는 사실 좋든 싫든 작가주의 영화 생산 시스템일 수 밖에 없으니까. 나라면 기억의 신뢰성 문제에 더 크게 초점을 맞추었을 것이다. 그리곤 관객들에게 당신이 이 영화를 보는 동안 얻은 정보들을 통해 볼때 누구의 기억이 맞다고 생각하십니까? 라고 질문을 던졌을 것 같다. 이런저런 이유들로 관객들이 돌아버릴 수도 욕할 수도 있지만 무슨 상관이겠는가? 영화가 한 두 가지 장르를 가진 것도 아닌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