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성의 문제
구성의 문제
아랫 글을 쓰다가 문득 생각난 것.
"많이 아는 소수와 적게 아는 다수, 그리고 소수의 제안과 다수의 토론과 동의를 통한 정강 정책의 채택같은 식이다."
이 견해는 온당할까? 쓰다 보니 이상하게 느껴지고 글을 올리고 나니 본격적으로 의심스럽다. 물론 인간의 능력이란 건 차이가 나게 마련이다. 당연히 아는 것도 많고 적음이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 많고 적음에 따라 이렇게 역할이 갈리는 것이 온당할까? 대부분이 그렇다고 할 것이고 또 역시 세상은 그런 식으로 굴러간다. 그러나 세상이 굴러가는 데는 참 많은 것이 필요한 법이다. 지식의 많고 적음이 그 모든 것의 절대적 기준은 아니다.
뭐 그렇다고 별로 그 실체가 명확치도 않은 집단 지성같은 것에 열을 올리고 싶지도 않다. 오히려 내가 주목하고 싶은 건 '역할'의 문제다. 많이 아는 이들이 제안을 하는 역할을 맡아야 할까? 그래봐야 어차피 그들은 소수다. 소수보다는 다수의 머리에서 나오는 생각이 더 다양할 수 있으며 다수이기에 좀 더 다양한 경험들이 있을 것이고 좀 더 현실적인 제안들이 나올 확률이 높다.
게다가 많이 아는 소수에겐 결정적인 한계가 있다. 우습지만 많이 안다는 것, 즉 공부에 시간을 많이 들였기 때문에 생기는 한계다. 총리가 되어서야 재래시장 들러보고 장바구니 물가에 놀랐다는 대한민국 최고 학부인 서울대학의 총장이시자 경제학을 가르쳐 밥벌이를 하시며 나름 대한민국 상경계열 학상들의 바이블인 경제학 원론을 사부이신 조순씨와 공저하신 정운찬 총리의 예가 그 단적인 증거다. 이렇듯 많이 아는 소수의 일반적인 한계가 명확한 상황에서 굳이 그들에게 '제안을 해보시오'라는 역할을 부여할 필요는 그다지 없어 보이지 않는가?
100분토론 진행자하면 손석희 교수다. 그리고 난 정운영 교수를 기억한다. 이 둘이 특히 기억에 남는 이유는 단순히 발언권을 이리저리 토스해주는 사회자가 아니라 그야말로 '진행자'였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더욱 강렬했던 사람은 정운영 교수다. 그는 토론자의 발언을 듣다가 비논리적이라거나 허황될 경우 반대토론자가 아닌 자신이 반박을 하곤 했다. 물론 그 방식도 손석희 교수보다 더 투박했고.
난 그들에게서 역할에 대한 한 가지 힌트를 본다. 많이 배워서 많이 아는 이들에게 주어져야 할 역할은 '제안'이 아니라 이처럼 '진행자'같은 역할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