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 파동
배추 파동이다. 이래저래 말들도 많다. 그 와중에 밭떼기하는 중간상을 욕하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중간상들만의 문제일까? 상황을 한번 뒤집어 생각해 보자. 밭떼기는 작물을 수확하거나 혹은 작황을 보기도 전에 이루어진다. 즉 실제 상품이 나오기도 전에 거래가 성립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주식 시장의 선물거래의 원초적 형태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만약 기후가 아주 불순했다거나 하는 이유로 상품이 전혀 생산되지 못했다면? 밭떼기를 한 중간상은 투자한 돈을 고스란히 날린다. 위험도가 높으면 그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비용은 최대한 낮취야 하는 것이 정석이다. 따라서 중간상들은 어떻게든 가격를 후려칠 수밖에 없다. 말하자면 밭떼기를 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밭떼기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산지가격과 유통가격, 소비자 가격의 갭은 여전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밭떼기는 왜 발생하는 걸까? 영세한 농민들 때문이다. 늘상 돈에 쪼달리는 영세한 농민들의 입장에선 아직 생산되지도 않은 상품에 선불을 얹어주는 밭떼기 중간상인은 고맙기 그지없는 존재다. 그 댓가가 너무 헐하더라도 말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이면 밭떼기 중간상인가? 이유는 정말 단순하다. 그들 이외엔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국가주도하의 농협은 농민들에게 영농자금 빌려주고 이자받는 일에만 열을 올리지 농민들의 삶이나 경제문제에 대해선 무관심하며 국가 역시 마찬가지다.
대저 다까끼 마사오 이래로 대한민국의 농업정책은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하나로 요약할 수 있다. '그냥 내버려 두면 어차피 나이많은 농민들은 죽을 것이고 그러면 농업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사실 아무런 대책도 없었다. 새마을 운동을 부르짖으며 공업화와 도시화를 부르짖었던 다까끼 마사오때부터 농업이란 그저 어서 빨리 없어져야 하는 사양산업일 뿐이었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김대중, 노무현 정권 들어서면서 시각이 많이 바뀌었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엔 퇴임한 대통령 최초로 고향에 내려가 농사에 손댄 최초의 인물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이들의 시각 역시 부족한 것이 있었다. 그들이 역설한 것이 바로 '경쟁력 제고'였기 때문이다. 이 슬로건이 의미하는 두 가지 중요한 요소는 대량생산을 통해 가격경쟁이 가능한 '거대농의 육성'과 '품질 향상'이었다. '품질 향상'의 경우는 <내부적으론> 그다지 큰 문제가 없지만 '거대농 육성'의 경우는 과거 다까끼 마사오에서 비롯된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경우에도 노쇠하고 영세한 농민들은 그저 배제의 대상일 뿐이다.
그러나 그 노쇠하고 영세한 농민들도 작물을 재배하고 그것들을 손수 시장에 들고 가서 그들이 생각한 적당한 가격에 팔고 싶어할 것이란 생각은 왜 해보지 않았을까? 화폐가 도입되기 이전 시절부터 그런 식의 상거래 행위는 존재했는데 말이다. 심지어 대기업이 참여한 국내 굴지의 유통업체들이 최첨단 유통망(주1)을 자랑하는 요즘도 5일장에 가면 이런 식의 상거래가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다. 왜 그들에게 그런 기회를 제공해볼 생각은 하지 않는가?
주1)
어느 국내 굴지의 유통업체에선 '바다에서의 밭떼기'를 최첨단 유통시스템이라며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