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대학 앞을 지나치다 선거 플랭카드를 보고 문득 떠오른.
어느 대학 앞을 지나치다 선거 플랭카드를 보고 문득 떠오른.
예전에 내가 큰 학상이던 시절의 일이다. 그 당시 대학은 지금과는 달리 너나할 것 없이 이른바 운동권이었다. 물론 당시엔 군사독재란 너무나 명확한 대상이 있었던 시절이니 당연한 일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 이후로 자칭 비운동권이란 말장난이 등장했지만 말이다. 비운동권이란 아해들이 하는 짓거리를 보면 운동권을 반대하는 게 전부다. 결국 반운동권이지 비운동권이 아니란 말이다. 그리고 운동권을 반대한다는 건 매우 정치적인 의미라 비운동권이란 단어를 사용할 수 없다. 특정한 정치적 지향을 가진 이를 반대하는 행위가 어떻게 정치적이지 않을 수가 있나?
결국 마치 매우 비정치적인 집단인 양 비운동권이란 단어를 사용하지만 그것조차도 정치적인 제스추어에 불과하다는 모순에 빠질 수 밖에 없다. 문제는 우습게도 이 말도 안 되는 정치적 행위가 설득력을 갖더라는 거다. 정치에 대한 근거없는 불신, 그리고 기초적인 수준의 인식이나 분별력조차 상실한 고등학교 4학년 학생들이 모인 대학은 그렇게 몰지각한 청춘들의 뜬 구름잡는 취업전문학교로 전락해 버렸다.
게다가 대한민국처럼 정치적 지향의 스펙트럼이란게 협소하기 그지없는 나라에선 반운동권은 딴나라당과 뉴라이트 단체들의 정치적 성격과 다를게 없다. 그리고 알다시피 딴나라당이나 뉴라이트의 정치적 속성이란 건 그냥 인종차별 파시스트에 불과하다. 고로 대학이란 공간에서 자칭 비운동권이지만 실상 운동권을 반대한다는 심각한 수준의 정치적 행위를 하는 청춘들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을 차별하고 종국엔 학살에 이른 나찌와 다를 바가 없다. 실제로 언제부터인가 매년 이맘 때 대학교 선거기간이면 운동권 학생들에게 가해진 폭력 소식를 심심찮게 듣게 된다. 운동권 학생들에겐 폭력을 휘둘러도 괜찮다는 것이 이른바 자칭 비운동권이란 청춘들의 생각인데 사실 나찌가 유대인을 학살한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당시와 지금은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 군사독재는 사라졌지만 좋은 세상은 오지 않았다. 그나마 10년 정도 괜찮았던 시절도 있었으나 사람들은 그마저도 스스로 내쳐버렸다. 이유는 한 가지다. 자기 주머니에 돈이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단언컨데 계속해서 그런 생각으로 세상을, 그리고 정치를 바라보는 한 주머니엔 절대 돈이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또한 그 이유로 선거 때마다 이 놈 저 놈 바꿔볼 것이다. 그러나 애시당초 비운동권과 반운동권을 구분할 줄 모르는 사람의 눈엔 대안이 보일 리가 없다. 눈앞에 존재한다고 해도 말이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정치권과 시민들은 다 함께 인식 수준의 하향평준화와 몰상식의 길을 가게 되는 거다. 내가 정치인이고 선거에 나가게 된다면 유세장에서 난 이렇게 말할 거다.
"살림살이요? 안 나아질 겁니다. 적어도 30년 정도 저에게 시간을 주시고 천천히 바꿔보라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 정도 참을 인내력이 없잖아요. 안 나아질 겁니다."
이렇게 말하는데 누가 뽑아줄까? 그런데 내가 보기엔 이게 사실이다. 안 나아질 거다. 지금처럼 딴나라당과 민주당이 탁구치듯 정권을 주고받는 상황에선 말이다. 어쨌든 저렇게 말하면 당선될 수가 없다. 그러니 정치권도 거짓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일자리 수백만개 창출'처럼 하는 넘이나 듣는 넘이나 다 아는 개거짓부렁이 통하는 이유다. 그렇게 대충 거짓말하고 대충 속아준다. 그래서 알다시피 세상 대충 돌아가는 건데 문제는 그렇게 살면 살림살이는 결코 나아지지 않을 거란 거다. 그런데 사람들은 꼭 남탓을 한다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