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몽, 허수아비 춤
"젊은 평론가 고인환·권채린씨, ‘강남몽' ‘허수아비춤' 정면 비판" 뭐 그다지 정면비판이라고 까지 이야기할 수준은 아닌 것 같다. 비판의 대체적인 내용은 결국 '소설로 읽기가 힘들다'는 것이고 더 쉽게 말하자면 소설로서의 재미가 없다는 것이고 그 이유를 계몽사상에 매몰된 나머지 소설적 형상화가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어차피 소설이란 건 글로 풀어가는 이야기다. 소설적 형상화가 미흡하다는 것은 분명히 절대적인 흠결이다. 그런데... <2장(‘생존만으로는 충분치 않다')의 주인공 김진을 중심으로 한 생동하는 인물들이 서사를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격변의 근 현대사가 인물들의 구체적 삶을 삼켜버린 양상이다> - 고인환 <소설에 등장하는 일광그룹 회장이나 그를 떠받치는 주변 인물들의 캐릭터도 평면적인 성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작가의 현실 인식이 그리 치밀하지 못함을 드러낸 것> - 고인환 글쎄다? 극단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드러나는 특징적인 모습은 바로 '확일화'다. 모든 가치관의 준거이자 기준점이 돈으로 환원되어 버리는 것, 그것이야말로 자본주의가 극단화된 모습이고 이것이 현실화되었을 경우 그 어떤 인간이든 그 획일성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다. 심지어 그 질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인간조차도 그렇게 행동해도 될만큼의 '경제적 여력'을 갖추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적어도 내 기준에서 보자면 인간군상의 모습이 틀린 것 같지는 않다. <그는 소설 속 "첫째 선진국의 기업들은 완전히 투명경영을 한다. 그러므로 전혀 탈세를 하지 않는다. 둘째 뒤로 비자금을 조성하는 범법을 저지르지 않는다"는 문장을 적시하면서 이렇게 반문했다. "작가의 단순 명료한 현실인식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을 불러온다. 미국식 정의를 구현하는 선진국인지 아니면 유럽식 경제 모델에 바탕한 선진국인지에 대한 해명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또한 이러한 선진국들이 과연 투명하고 깨끗한 경제민주화의 길을 걸었는지에 대해서도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 아닐까?> - 고인환 글쎄? 이 정도 주제를 다루려면 단편작으론 충분치 않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소설이라고 부르기 힘든 수준이 아닐까? 물론 불가능하다는 말은 아니다. 토지라는 소설도 있으니까. <‘강남몽'에는 다양한 군상이 등장하지만 욕망의 차별성이 거의 읽히지 않으며 성격의 발전 또한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권씨를 "‘강남몽'의 인물들은 역사의 주요 갈피와 흐름을 실감나게 체현한 개인이 아니라 역사에 압착된 개인"이라고 전제, "이는 ‘강남몽'이 주어진 역사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인물들을 서사를 전개시키기 위해 매우 기능화된 단자로서 처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결국 ‘강남몽'은 거대한 역사의 지류를 조형화하기 위해 다층적인 욕망, 차이의 욕망이 발산하는 역동적인 서사의 세계를 방기한 매우 순응적인 텍스트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 권채린 이 역시도 같은 의문이 든다. '다층적인 욕망, 차이의 욕망'이란 것은 실제로 인간의 고유한 특성이긴 하다. 돈이란 같은 목표를 갖고 있더라도 그 욕망의 원인과 구성, 발전, 구현 과정은 사뭇 다를 수밖에 없다. 사실 이렇게 말해봐야 전제가 '돈'인 한 큰 차이는 별로 없다. 기껏해야 그 욕망의 대상인 돈의 액수정도일까? 물론 미시적인 인간의 모습에 천착하는 소설과 소설가의 눈엔 그것이 다르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걸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 '욕망의 차이'가 '역동적인 서사의 세계'를 구성한다고 보긴 힘들다. 분명 차이는 다름을 만든다는 것이 일반론이다. 그러나 그것 역시 그 차이와 다름이 어느 정도 인정되는 사회라는 전제가 있어야 가능하다. 만약 그런 차이와 다름을 터부시하고 금기시하는 사회라면? 차이와 다름이 드러나는 방식은 오로지 지배/저항의 대당일 수 밖에 없다. 이건 말 그대로 '일대일 대당'이지 '다양한 차이'는 아니다. 난 강남몽과 허수아비 춤을 읽지 않았고 읽을 생각도 별로 없다. 그런데 웬지 난 비평가들이 비판하는 그 지점이 오히려 더 현실적이란 생각이다. 비평가들의 비판이 가리키는 지점이 그런 획일화된 사회로 나아가는 과정과 그 과정에 어떤 식으로든 참여하는 인간 군상들의 다양한 욕망의 차이를 세밀하게 형상화하지 못했다라는 지적이라면 수긍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웬지 비판이 비판이 아니라 칭찬처럼 들리는 건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