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per+Media

편견에 대항하기 위한 유일무이한 수단은 부정밖에 없다.

The Skeptic 2010. 12. 17. 17:03

<게임중독 美명문대 중퇴생 '묻지마 살인'>

 

<서울 강남지역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의 모 주립대로 유학을 갔지만 외국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지난 7월 학교를 그만두고 귀국했다.>

 

<경찰은 "박씨와 피해자는 원한이나 금전 관계가 전혀 없고 일면식도 없어 전형적인 `묻지마 살인'으로 보인다. 프로파일러를 통해 구체적인 범행 동기를 조사하고 반사회적 인격장애나 충동조절 장애가 있는지도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거의 모든 언론에서 이 사건을 보도하면서 강조점을 찍은것은 '게임중독'이었다. 거의 모든 헤드라인이 '게임중독'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실제 기사 내용을 들여다 보면 이야기는 사뭇 달라진다. 위에 인용한 세 개의 구절만 비교해봐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게임중독'을 강조해야 할까? 아니면 '반사회적 인격 장애', '충동조절장애', 혹은 외국 유학 실패에 대한 스트레스를 기저 원인으로 보아야 할까?

 

인간의 특징은 다양성이다. 똑같은 환경에서 자란 인간이라고 해도 서로 다르며, 같은 원인을 공유하더라도 그에 반응하는 양태는 사뭇 다르다. 그런데 만약 어떤 게임에 중독되는 것이 사람에게 살인충동을 불러 일으킨다는 게 사실이라면? 그 게임에 중독된 이들은 누구든 사람을 죽이고 다녀야 하는 걸까? 난 아직까지 그런 사건이 있었다거나 혹은 그런 악마같은 게임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물론 '게임중독' 자체가 방아쇠의 역할을 했을 수는 있다. 그러나 총알이 장전되어 있지 않았다면 어떨까? 장전되지 않은 총은 방아쇠를 아무리 잡아 당겨도 타인에게 해를 끼칠 수 없다. 최대한 양보해도 결국 게임중독은 방아쇠일 뿐 총알은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근거도 없고 논리도 없는 이야기가 역시 논리도 없고 근거도 없는 이들의 입을 떠돌다 보면 마치 진실인 양 호도된다는 점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 사건때문에 내가 죽는 것도, 내가 아는 누군가가 죽는 것도 아니니 신경쓰고 싶지 않은 거다. 그러다 문득 이야기거리가 되면 아무런 의심이나 고민도 없이 들었던 편견을 떠드는 것 뿐이다. 그리고 말했다시피 이런 말이 돌고 돌아 진실인 체 하는 편견이 된다. 그렇게 별 상관도 없는 게임이, 하드락이, 좌파가, 지역차별과 인종차별이 발생하는 거다. 

 

당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스스로를 변호하려고 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론과 그 여론에 편승한 편견의 경우라면 침묵은 그저 긍정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편견에 대항하기 위한 유일무이한 수단은 부정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