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츄어리즘

선동열 감독 해임

The Skeptic 2010. 12. 30. 16:46

선동열 감독 해임

 

권고사직, 용퇴같은 이야기들이 흘러 나오고 있지만 발표가 아니라 정황만 놓고 보자면 사실상 해임과 다를 바가 없다. 문제는 이번 시즌 전 5년 재계약이란 파격적인 대우를 받은 감독을 1년만에 구단에서 내쳤다는 점이다. 물론 그런 일이 아주 불가능한 건 아니다. 그런데 대개 그런 경우엔 구단의 기대치보다 성적이 나오지 않았을 경우다. 문제는 올 시즌 통산 2위라는 라이온즈의 성적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니 오히려 리빌딩에 돌입한 팀치곤 아주 훌륭한 성적이다. 그런데 도대체 왜?

 

아직은 이번 해임 사유에 대한 공식적인 발표가 없는 관계로 지나친 억측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한 편으론 공식적인 발표가 있다고 한들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도 든다. 대체적으로 이번에 삼성그룹 전체의 대대적인 인사이동과 맞물린 것아니냐는 예상들이 많은데 단순한 기업도 아닌 스포츠단까지 똑같은 기준을 들이민다는 건 아무래도 석연치 않다. 다만 삼성그룹 전체의 분위기에 부응하기 위한 구단 수뇌부의 과잉충성이라면 이해할 수도 있다. 물론 어처구니없긴 마찬가지지만 남조선 기업들이 그런 식으로 굴러가는 걸 한두번 본게 아니잖은가? 

 

해임이 전격적으로 발표됨과 동시에 후임감독의 선임도 동시에 이루어졌다. 류중일 코치가 감독으로 올라선 것이다. 그 자신조차도 아직 얼떨떨하다고 고백할 정도로 전격적이긴 하지만 아무런 언질이 없었을 것이라곤 볼 수 없다. 일방적인 해임과 선임이라곤 해도 외부 발표 금지를 전제로 구단의 언질은 있었을 것이다. 그게 뭘까? 

 

"어떤 야구를 펼칠지를 할 말이 전혀 없다. 다만 프랜차이즈 스타를 앞세워 올드팬들이 야구장을 다시 찾게끔 야구를 하겠다" 

 

중요한 키워드를 볼 수 있다. '올드팬', 선동열 감독이 부임하기 이전 라이온즈는 공격력의 팀이었다.그 팀을 선동열 감독은 '지키는 야구'를 표방하며 수비, 주로 투수진을 강화하는 쪽으로 변화시켰다. 그러나 그 변화의 와중에 성적과는 상관없이 과거의 라이온즈를 그리워하는 올드팬들이 다수 떨어져 나갔다는 주장도 있다. 물론 난 그 견해에 반대한다. 오히려 선동열 감독이 순혈주의에서 벗어난 감독이라는 점때문에 매도당했다고 말하면 수긍해줄 수 있다. 실제로 라이온즈와 타이거즈의 경우 스스로 '올드팸'임을 자처하며 순혈주의를 고집하는 꼴통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문제는 새로 선임된 류중일 감독이 라이온즈가 추구할 야구에 대해선 할 말이 전혀 없다고 언급하는 와중에 올드팬과 프랜차이즈 스타를 언급했다는 점이다. 사실 이건 앞뒤가 안 맞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언급이 나올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결국 전격적인 감독교체를 단행한 구단 수뇌부의 속내가 무엇인지 약간은 짐작해 볼 수 있는 계기가 아닐까? 

 

그리고 만약 이게 전격적인 감독 교체의 사유라면 라이온즈 구단 수뇌부는 아주 심각한 착각을 하고 있는 중이다. 프로야구 구단의 리빌딩은 말처럼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벌써 10년 넘게 그걸 하고 있는 구단도 있다. 리빌딩이 힘든 이유는 바로 공수의 밸런스를 맞추기가 힘들기 때문이고 외부 영입으로 완성시키는 방식은 너무나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 기준에서 보자면 선동열 감독은 팀리빌딩을 가장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었던 감독이라 봐도 무방하다. 그리고 사실 그 때문에 5년장기계약을 맺은 것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이제 와서 해임하는 건 도무지 앞뒤가 안 맞는다. 

 

구단 수뇌부의 엄청난 착각이거나 아니면 삼성 그룹의 대단한 오판이거나 둘중의 하나다. 성적, 선동열 감독 재임 시절의 성적이나 내년 시즌의 성적같은 것과는 아무 상관없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