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인간되기 힘들다.

The Skeptic 2011. 1. 19. 02:11

난 인간되려면 아직도 멀었다. 

 

일요일의 일이었다. 몇 십년만의 한파가 계속되고 있다는데 민예총에서 일하는 환쟁이 후배 녀석이 찾아왔다. 죄박이가 대통령질을 시작한 이후로 자기한테 반기를 들었다는 이유로 거의 모든 예산이 삭감되어서 힘들다는 푸념을 들었던 게 1년도 더 된 일이고 그 후로 처음 보는 거였다. 요즘은 어떠냐는 질문에 그냥 피식 웃는 꼴을 보니 별로 나아진 것 같진 않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나같은 넘은 지금 현재 대한민국 돌아가는 꼬라지를 보면서 이제 짜증을 넘어 거의 자포자기 상태다. 온 나라에 구제역이 창궐하여 네발달린 짐승이 떼죽음을 당하고 조류독감도 번지기 시작하여 날개달린 짐승들의 사체가 하늘에서 비처럼 내리는 현상이 성경에 쓰여 있다는 바로 그 지구종말의 근거여서 대한민국 뿐만 아니라 온 지구가 멸망하는 전조라고 해도 불안하거나 두렵기는 커녕 그냥 '그래! 씨바! 그냥 같이 싹 죽어 버리자!'며 콧방귀를 뀔 지경이다. 

 

그런데 내 앞에 앉아서 전기난로에 몸을 녹이며 일회용 인스탄트 커피를 홀짝거리는 저 후배란 인간은 대관절 머릿속에 뭐가 들어 앉아 있길래 아직도 저렇게 해맑게 웃으며 여유롭단 말인가? 이상한 질투심같은 것이 살짝 섞인 궁금함이 몰려와서 물었다. 대관절 넌 뭐가 좋아서 그렇게 희희낙락이냐고. 

 

"몰라서 그러는 건데요 뭘. 아이들처럼 뭘 몰라서 그러는 건데 짜증내면 안 되죠. 그냥 어르고 달래고 설득하는 거죠. 내가 모르는 건 또 다른 사람이 어르고 달래가며 나한테 알려주는 거구요. 사람들 다 그렇게 사는 거잖아요."

 

내가 졌다. 그런데 이 나이먹도록 그런 깨달음도 얻지 못한 걸 보니 아무래도 죽을 때까지 그른 모양이다. 홍상수 감독 영화중에 이런 대사가 생각났다. 

 

"우리 인간 되기 힘들다. 그래도 괴물은 되지 말자."

 

그냥 그걸 목표로 삼으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