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작가의 죽음
인간은 주변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을 주관적으로 판단하는 동물이다. 다들 그렇게 사니 그걸 더러 뭐라고 할 것은 아니다. 다만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면 '말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선 침묵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말할 수 없는 일'이란 것은 이야기를 끌어갈만한 사실이 불분명하거나 없는 경우, 그리고 그런 것이 없더라도 논증이나 논거를 세우기가 불가능한 경우를 지칭한다.
말하자면 흔히 '카더라'라고 말하는 경우들인데 불행한 것은 대부분의 인간들은 '사실/논증/논거'따위보다는 '카더라'에 더 잘 넘어간다는 점이다.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사실/논증/논거'는 조금이라도 머리를 써야 하는 반면 '카더라'는 머리따위는 전혀 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냥 듣고 그렇게 믿어 버리면 그만이다. 난 그런 이들을 일러 '바보' 내지는 '반편'이라고 부르며 전혀 개선의 여지조차 보이지 않는 경우엔 사람취급조차 하지 않는다. 물론 이런 자세가 좋다는 말은 아니다. 그저 자기 성질을 이기지 못한 인간이 취하는 자기방어의 일환일 뿐이고 자기방어라는 거 그렇게 좋은 삶의 자세는 결코 아니다.
지하철을 타고 오는데 옆 자리에 젊은 남녀 한쌍이 앉았다. 그리곤 최근에 불행한 죽음을 맞이한 한 젊은 시나리오 작가의 이야기가 화제가 되었다. 여자의 반응은 뭐랄까? 지극히 상식적이고도 일반적인 반응이었다. 그런데 남자의 반응이 재미있었다. '어떻게 그렇게 죽을 수가 있지? 친구나 가족이 없나? 대인관계에서 문제가 있는 것 아냐? 그렇지 않고서야...' 하는 식이었다. 내가 어렸다면 이런 반응에 대해서 성질을 냈을지 모르지만 나이가 든 지금은 그러진 않는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나역시도 그렇게까지 말할 수위는 아니지만 그런 생각을 한다.
문제는 나이가 좀 든 사람들일수록 이런 류의 생각을 많이 하며 심지어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 경험이고 연륜에서 배어 나오는 지혜라는 식으로 '깝죽댄다'는 거다. 분명히 말하건데 이건 원숭이가 깝죽대는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가장 먼저 그들에겐 그런 판단을 내릴만한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점이다. 지극히 전형적인 '카더라'일 뿐이다. 일반론은 대부분의 경우에 옳지만 구체적인 상황앞에서 중요한 것은 구체적인 사실이지 일반론이 아니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사실조차 모르면서 타인의 구체적인 삶을 함부로 일반론에 꿰어 맞추려는 건 바보나 반편들이 하는 짓이다. - 예외는 있다. 지극히 주관적인 언행을 일삼으면서 그것이 일반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 어떤 반편들에게 그렇지 않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선 일반론을 강조할 필요도 있다. 물론 대개 이런 시도는 실패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두번째 문제는 그들은 사건의 원인과 결과를 완전히 거꾸로 파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그 사건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든 갖가지 억측을 늘어놓을 수 있다. 심지어 그 억측들이 일정한 수준의 일반론에 기인하는 한 그 중 하나가 맞을 수도 있다. 문제는 그들이 맞춘 그 사실은 사건의 원인이지 결과가 아니란 점이다. 심지어 그들이 맞추었을지도 모를 그 사실과 이번 사건은 사실 아무런 관계도 없다.
살다보면 알게 되는 건데 세상엔 정말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다. 당신이 무엇을 상상하건 그 이상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들이 이 세상엔 널리고 널렸다. 그래서 사람들, 최소한의 자의식 혹은 수준을 좀 많이 낮취서 최소한 취향이란 것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어떤 범위로든 세상과 불화를 일으킬 수 밖에 없는 것이 인생이다. 그 와중에 아직도 유아적 인식 수준을 보이는 이들은 자신의 취향과 다른 이들의 삶을 이해하지 못한다. 심지어 어떤 식으로든 부정하려고 든다. 그러나 '이미 존재하는 것을 부정한다'는 건 그 자체로 그냥 유아, 초딩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이런 거다. 지하철 옆 자리에 앉았던 그 남자의 억측처럼 그 작가가 대인관계에서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강조하지만 그런 사람들 세상엔 이루 헤아릴 수도 없을만큼 널렸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런 이들이 다 그런 비참한 마지막을 맞는 것이 온당한 일은 아니란 거다. 난 당신의 자의식, 아니 유아적 취향에 대해서 존중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냥 그러려니하고 넘어가 줄 순 있다. 그러나 당신의 자의식, 아니 유아적 취향때문에 타인의 불행이 가리워지는 것까지 인정해줄 순 없다. 만약 당신이 그걸 인정해 달라고 한다면 나 역시 나이는 먹는데 인식 수준이 높아기는 커녕 유아적 취향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당신의 상대적 퇴행을 마음껏 혐오해줄 자유도 인정해주어야 한다. 하긴 이런 사소한 수준의 주고받는 관계조차 유아적 취향의 수준에선 인지하지 못할 테지만 말이다.
p.s.
늘 느끼는 거지만 확실히 감정 이입과 감정 교류라는 점에서 보자면 여성들이 남성들에 비해서 월등하다. 그래서 다시 한번 느끼는 건데 남자들은 정말로 현명해져야 한다. 그렇지 않을 거라면 감정 교류도 제대로 못 하고 현명하지도 못한, 참 어디에도 쓰기 힘든 쓸모없는 존재가 되는 게 남자다. 그게 힘들면 옛날 어르신들 말씀처럼 사는 방법도 있다. 그리고 다행히도 이 방법은 참 손쉽다. '여자한테 지고 살아라. 그게 이기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