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란...
"마음만 있으면 못 하는게 어디 있느냐!"
옛날에 친척 어른중의 한 분이 이렇게 말씀하셨더랬다.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큰 장애가 있지 않은 이상 마음만 있다면 못 하는 일, 정확히 말하면 시작조차 해보지 못하는 일이란 건 없다. 다만 누구나 그럴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또 다들 시작조차 하지 않는 것을 더 낫다고 판단하는 일들이 있기 때문에 암묵적으로 합의된 '적절한 핑곗거리'들을 통해 '못 하는 일', '안 되는 일'이란 대략적인 범주를 만들어 내고 다같이 사이좋게 손잡고 안주하는 거다.
조금 이상하게 들리고 앞뒤가 안 맞게 보이고 납득이 가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 행복하고 안전한 집단적 안주는 누구에게나 적용된다. 심지어 명절날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서 혼자 소리높여 주장하셨던 그 친척 어른조차도 전혀 그런 분이 못 되셨다. 개인적으로 그와 관련된 구체적이고도 세세한 사정을 알고 있기에 그 소리를 하는 내내 한심한 눈빛으로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내린 결론중의 하나는 대부분의 인간들은 나이가 들면 진짜로 '올챙이적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분명히 알아들을만한 눈빛으로 쳐다 보았건만 이 한심한 노친네 끝까지 목소리를 낮출줄 모르더라.
내게 명절이 가장 짜증나는 건 친족, 혈연이란 이름과 명목으로 모인 이들이 올망졸망 둘러앉아 이상한 소리들을 해댈 때다. 이제 나도 나이가 있는 지라 손위 연배 어른분들이 하나둘씩 북망산 행을 하고 계셔서 어른이라 부를만한 분들이 많진 않다. 그런데 왜 걔중 조금 나은 분들이 먼저 돌아가시는지는 아직도 미지수다.
'마음만 있으면 무얼 못 하겠느냐?'고 소리지르던 그 양반, 옛날에 온 집안이 다 가난하던 시절에 제사도 지내지 못했던 사실을 기억하지 못 한다. 지금은 조상을 모시고 전통을 지켜야 한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떠들지만 그 땐 제사 안 지내고 지나가기 일쑤였다. 내 기억에 그 때 그 양반이 뭐라고 했던 기억 전혀 없다.
친척 젊은 것들은 다 일하러 다니느라고 바쁘니 신정으로 몰아서 제사를 지내고 구정엔 다 쉬자는 울 엄니의 제안에 '전통을 지키지 않는다'며 소리를 지른다.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옛날에 그러니까 대머리 군바리 전두환이가 세계적 추세에 맞추어 신정을 새해 설날로 하자고 강제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때 우리 집안도 신정에 떡국먹고 제사지냈다. 그 때 그 양반 아무 말도 없었다.
난 그 양반이 왜 이런 헛지랄을 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 시절 그 양반 지지리도 가난해서 친척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었다. 그 와중에도 자식들은 다 잘 커서 지금은 형편이 꽤 나은 축에 속한다. 게다가 집안의 어른들이 한분 두분 돌아가시는 바람에 남자들 중엔 서열 1위다. 자기에게 불리한 상황, 목소리를 높일 만한 상황이 아닐때는 쥐죽은 듯이 있다가 이제서야 소리를 지르는 거다. 참 못난 인간이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내가 점점 더 그 헛소리를 참아주기가 힘들어진다는 거다. 그 양반 얼굴 안 보고 사는 건 문제가 아닌데 그 양반 자식들하고까지 반목할 필요는 없는데 말이다. 늘 그렇지만 친족, 친척이란 이름의 집단은 대처하기가 힘들다. 적어도 내 경우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