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
고립
사실 인간에게 가장 치명적인 것은 바로 '고립'이다. 그중에서도 인간관계의 단절이란 고립은 더더욱 치명적이다. 그런 점에서 볼때 애완동물과의 교류나 온라인상의 인간관계를 통해 그런 문제의 많은 부분을 대체할 수 있다는 주장은 일견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그에 대해서 난 지극히 비관적인 사람이다. 무엇보다도 애완동물이나 온라인 상의 관계와 대면접촉을 전제로 한 인간관계라는 건 그 양상이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대면접촉에 의한 인간관계의 가장 큰 특징은 '쌍방향'이라는 데 있다. 반면 애완동물과의 관계라는 건 지극히 일방적이다. 애완동물을 키우는 이들은 동물들도 감정이 있고 주인과 감정교류를 한다고 주장하지만 대개의 경우 그것은 애완동물 주인들이 자신의 감정상태를 애완동물에게 일방적으로 투사하는 것에 불과하다. 즉 실제론 동물들이 어떤 감정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동물에게 자신의 감정을 투사하고 그 감정이 동물에게서 나온다고 믿는 것이다. 쌍방향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다른 각도에서 받아들이는 것으로 이 경우에도 방향은 일방적이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일반적인 동물들의 경우엔 인간과 같은 복잡한 감정 체계를 갖추고 있지 않다.
온라인상의 경우엔 누가 봐도 쌍방향으로 보인다. 게다가 대상 역시 인간이다. 한때 인터넷이 등장한 초창기엔 이러한 특성때문에 인간관계의 새로운 장을 열수도 있을 것이란 예상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지나친 기대라는 것이 밝혀지는 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유는 온라인상의 접촉을 통해 인간들이 나눌 수 있는 감정교류의 폭이 지나치게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온라인 상에서 상대방의 비위를 거스르거나 감정을 상하게 할 언사를 하지 않기 위해 조심하게 마련이다. 쉽게 말해서 '즣은 게 좋은 것'이란 식인데 이런 형태의 교류는 대면접촉에서 오고가는 감정교류와 비교하여 범위나 다양성면에서 너무나 협소할 수밖에 없다. (주1)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면접촉에 의한 인간관계가 아니라 애완동물이나 온라인 상의 인간 관계, 나아가 이 두 가지를 한꺼번에 구현할 수 있는 게임에 대해 사람들이 쉽게 빠져드는 이유는 바로 관계의 용이함때문이다. 관계가 복잡하다는 건 그 관계에 대처하기 위한 방법들도 복잡하고 쉽지않다는 말이다. 반면 앞서 언급한 세 가지의 경우는 대면접촉에 비하면 너무나 편하고 편리하다. 그러나 이런 관계에 집착하기 시작하고 중독되는 경우엔 실제 인간과의 관계를 맺기 어려워 진다.
일방적인 감정투사 행위를 쌍방향 감정교류로 착각하고 그것에 집착하거나 심지어 중독에 빠지는 것은 사실 스스로를 고립상태로 몰아가는 행위다.
주1)
드물게 위악적인 행동을 통해 관심을 끌려는 초딩들도 있긴 하다. 특히 초증고 방학기간이면 심해지는 이런 현상은 짜증스럽기도 하지만 사실 어쩔 도리가 없다. 원래 그럴 수 밖에 없는 나이아닌가? 태양이 자신을 중심으로 돈다고 여길 나이며 아직도 관심을 먹고 자라는 존재들이니까. 물론 무관심만큼이나 과도한 관심 역시 좋지 않긴 마찬가지지만. 물론 나이먹고도 그런 증상을 보이는 게 더 못 봐줄 일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