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 비상총회 뉴스를 보다 문득 용산참사를 떠올리다.
카이스트 비상총회 뉴스를 보다 문득 용산참사를 떠올리다.
카이스트 학부 총학생회가 사상 첫 비상총회를 열었단다. 어떤 내용들이 논의되었는지는 정확히 알기 어렵지만 보도된 내용만 놓고 보면 일단 1)서남표 총장이 스스로 개혁이 실패했음을 인정하도록 요구하는 안 2) 학교 정책 결정과정에 학생 대표들이 참여하고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제도화할 것, 이 두 가지가 가장 크게 기사회되었다. 물론 그 이외에도 징벌적 등록금제, 영어 강의같은 시급한 현안들과 총장선출시 학생의 참여같은 것들도 있었단다.
카이스트라고 하면 사람들은 대한민국에서 날고 긴다는 수재들이 가는 곳으로 안다. 서울대같은 곳도 마찬가지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이런 대학을 다니는 학부생들은 남들보다 특출난 구석이 있는 걸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래봐야 학부생들이다. 아직 세상물정모르는 애들이란 것도 똑같다.
첫번째 안건의 의도가 뭘까? 서남표 총장이 고해성사를 통해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날 것을 바라기라도 하는 걸까? 거듭 강조하는 바지만 사람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다. 게다가 현재 카이스트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서남표 총장의 고해성사같은 건 전혀 필요치 않다. 설령 그가 그런 행동을 한다고 한들 그게 실질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오히려 뒤집어 생각해보면 이건 한 인간에게 자신이 옳다고 믿는 가치관을 스스로 부정하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문제는 앞서 말한 것처럼 사람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렇게 보면 이건 서남표란 개인에 대한 모욕일 수도 있다. (주1)
두번째 안건의 경우는 뭐랄까? 지나치게 낙관적이고 낭만주의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카이스트 역사상 첫 학생 비상총회'를 열었을 정도로 학생들의 결집된 힘이란 것이 그다지 가시화되어본 적 없는 대학, 그것도 국립대학의 학부생들이 학사 전반과 총장 선출과정에 대한 권한을 달라고 요구한다라. 내가 학상이던 시절에도 그런 것 참 많이 했다. 총장실도 뒤집어 엎고 각급 사무처들 다 점거하고 난리를 피웠지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껏 그런 것을 인정해주는 대학이 있다는 소리 들어본 적이 없다.
물론 난 원칙적으로 그런 시스템이 좋다고 본다. 그러나 여기엔 분명한 제약조건이 따라야 한다고 본다. 학부생들의 기본적인 인식 수준과 학생조직의 연속성 문제가 있다. 그들의 생각이 가치가 없다는 말은 아니지만 수준차이라는 건 분명히 존재한다. 그런 그들이 한 대학내에서 좋게 말해 독립적인 나쁘게 말해 폐쇄적인 학생조직으로 존재하는 한 그들이 참여할 수 있는 학교 정책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심지어 학부생들은 때되면 학교를 떠나야 하는 존재들이다.
전문적으로 그와 관련된 일을 연구하고 조력해주는 외부조직의 존재와 그런 외부조직과의 교류를 인정해주지 않는 한 학생조직의 한계는 너무나 분명하다. 문제는 남조선은 그런 외부조직을 싸잡아서 '제 3차'라고 치부하며 존재를 인정치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용산참사같은 사건의 경우 철거민들을 돕기 위해 갔던 전국철거민연합같은 조직에 대해 반감을 보이는 사람들이나 민주노총에 대한 반감같은 것이 그런 것들이다.
그러나 그런 조직들에 대해 눈에 쌍심지를 켜는 이들조차 자신이 곤란한 상황에 처하면 전문가라 불리는 이른바 '제 3자'이자 '외부조직'에게 기댄다. 심지어 법적인 문제의 경우 자기자신은 아무 것도 모른 채 변호사가 하라는 대로 하는 허수아비들도 수두록하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말한다. '그들은 국가의 공인을 받은 전문가들 아니냐?'고. 고작 그게 기준이라면 말이다. 민주노총도 국가의 공인을 받은 조직이다. 당신들이 눈에 쌍심지 켤 이유가 전혀 없다.
무슨 핑계를 대도 결국 결론은 당신들은 이른바 '색깔론'에 자신의 모든 가치관을 내맡긴 사람이란 의미고 민주주의 국가에서 왜 공산주의자나 사회주의자가 없어져야 하는지 조차 모르는 몰상식한 인간이란 의미일 뿐이다.
주1)
개인적으로 경쟁 만능주의같은 신자유주의적 가치관으로 똘똘 뭉친 인간들은 모욕을 당해도 싸다고 본다. 왜냐면 신자유주의는 가진 자들에게만 이로운 논리일 뿐 경제학적으로 아무런 가치도 없는 쓰레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내가 지적하고 싶었던 건 방법상의 문제일 뿐이다. 서남표 나이 만 74세다. 그런 사람이 고작 타인의 죽음때문에 자신의 가치관을 바꿀까? 그럴 수 있을 만큼의 정서적 공감 능력을 갖춘 사람이라면 애시당초 카이스트에 그런 시스템을 도입하지도 않았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