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신은 당신을 축복했을 겁니다."
카를로스 델가도 은퇴
1988년 블루 제이스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한 카를로스 후안 델가도. 메이저 리그에서 활약한 기간 17년. 통산 타율 2할 8푼, 누적 홈런 수 473개, 10년 연속 30개 홈런을 기록한 선수. 그 선수가 은퇴했습니다. 1972년 푸에르 토리코 생.
야구의 역사가 오래된 미국이고 사실 자국리그가 아니다 보니 저 정도의 통산 기록은 우리 나라 야구팬들에겐 큰 감흥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선수가 활약했던 시기가 그 유명한 '스테로이드의 시대'라는 걸 감안하면 사실 현재 벌어지고 잇는 스테로이드 관련 재판들이 끝나면 뒤늦게나마 엄청난 기록으로 기록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전 그런 일때문에 그의 은퇴를 거론하는 것이 아닙니다. 2004년 미국에선 그를 둘러싼 논란이 벌어집니다. 원숭이 수준의 지능을 자랑하는 아들 부시가 9.11 테러와 연결시켜 구체적인 증거도 없이 일으킨 명분없는 전쟁, 이라크전이 발발하고 미국은 그 광기에 휩쓸리던 시기였습니다. 그에 발맞추어 야구장에선 전에 없던 집단적 의식이 벌어집니다.
미국 프로야구는 7회가 끝나면 'Take me out to the ballgame'이란 노래에 맞춰 관중들이 스트레칭을 하는 관습이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 미국을 휩쓸던 극단적 애국주의의 영향에 따라 노래는 'God bless america'로 바뀌었고 관중들의 스트레칭은 기립과 경례로 바뀌었고 선수들 역시 그라운드에 나가 도열해야만 했습니다. 물론 그런 정신나간 바람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만 9.11 테러의 피해지였던 뉴욕에서만큼은 끈질기게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 해 양키스와의 시즌 첫번째 대결, 그리고 7회 구장엔 'God bless america'가 울려 퍼지고 선수들이 도열한 상황, 그러나 카를로스 델가도는 덕아웃을 지킵니다. 돌아온 것은 미국내에서도 진보적이라 손꼽힌다는 뉴욕시민들의 격렬한 야유, 그러나 그는 끝내 덕아웃에서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반전주의자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다음 해 뉴욕 메츠로 이적한 그는 다른 선수들과 같이 도열합니다. 9.11 사태의 직접적인 피해지였던 뉴욕이란 도시의 특성과 그 지역을 연고로 한 구단의 끈질긴 요구가 있을 수 밖에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그전에 카를로스 델가도가 그 행사를 거부한 소식, 당시로선 대단한 화제를 끌 수 밖에 없었던 그 사건으로 인해 그의 의도는 이미 잘 알려진 후였습니다.
집단의 광기는 개인의 눈과 정신을 흐리게 만듭니다. 사실 누구도 그런 것에서 자유롭기 힘듭니다. 심지어 그 집단적 광기가 지향하는 바가 살인을 전제로 한 전쟁이라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적어도 그런 면에서 보자면 카를로스 후안 델가도는 지구상에서 가장 용기있는 사람중의 하나입니다.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신은 당신을 축복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