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racism

카이스트, 노숙자, 영등포 집창촌 - 관성의 법칙과 시간차.

The Skeptic 2011. 4. 16. 00:30

카이스트, 노숙자, 영등포 집창촌 - 관성의 법칙과 시간차. 

 

외부에서 어떤 힘이 작용하지 않는 한 어떤 물체는 같은 상태를 유지한다는 법칙. 뉴튼의 제 1법칙이라고도 알려져 있다. 자연과학적 지식은 인문이나 사회과학의 영역에서도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면모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해서 이 '관성의 법칙' 역시 인문, 사회과학 분야에서도 많이 인용되는 편이다. 그러나 분명하게 다른 점도 존재한다. 바로 자연과학에선 그저 과학적 사실, 가치판단과 상관없는 사실이지만 알다시피 인문, 사회과학에선 가치판단을 배제하기 힘들다. 

 

이 '관성의 법칙'이 인문, 사회과학으로 넘어오면 다소 부정적인 뉘앙스로 바뀐다. 특히 요즘처럼 신자유주의적 가치관이 광풍을 일으키는 상황일수록 더더욱 그렇다. 앞서 카이스트 사태를 언급한 글에서도 마찬가지다. 비상학생총회에서 서남표 총장이 추진한 개혁작업이 실패했음을 인정하라는 요구사항이 안건 투표에서 부결된 것만 봐도 그렇다. 물론 많은 학생들이 찬성했지만 반대 표를 던진 많은 학생들의 생각은 이렇다. 

 

'경쟁을 통해 효율을 극대화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다만 방법적인 면에서 잘못된 것이다. 따라서 경쟁을 중심으로 한 개혁정책은 여전히 유효하다.' 언뜻 듣기에 따라선 그럴 듯 하다. 물론 아주 틀렸다고 말하긴 힘들다. 효율을 높이기 위한 각종 방책들 중 경쟁은 가장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방식이니까.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경쟁이 모든 경우에 유효한 것은 아니란 점이다. 특히 주목하고 주의해야할 것은 경쟁으로 인해 피치 못하게 발생하게 될 '낙오자들'과 관련된 문제다.

 

모든 사회적 현상이 대부분 그렇듯이 경쟁역시 어떤 형태든 권력을 소유한 소수의 관리자 그룹이 주도하며 다수의 추종에 의해 성립된다. 경쟁이 이처럼 집단적 움직임에 의해 움직이는 반면 낙오자들에 대한 배려, 특히 남조선에선 낙오자 스스로 알아서 해야할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되는 경향이 강하다. 대개의 낙오자들은 그런 상황에서 스스로 헤어나오기 힘들다. 결국 낙오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경쟁은 승자독식과 낙오자들의 재기불능, 그리고 그로 인한 사회적 불안 요인의 증가로 연결된다. 경쟁으로 인해 효율은 높아졌을지 모르지만 사회적 불안 요소들 역시 그에 비례해서 늘어날 것이다. 이것이 경쟁사회가 가지고 올 핑크 빛 미래의 모습일까? 

 

무한 경쟁을 예찬하는 신자유주의자들은 낙오자들 역시 결국엔 경제의 효율적 성장의 과실을 맛보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진 사례는 거의 없다.(개인적으로 전혀 없다고 보지만) 설혹 벌어진다고 하더라도 낙오를 한 시점과 성장의 과실을 맛볼 시간 차가 지나치게 크다면? 그런 상황에서 '관성의 법칙'마저 적용된다면? 그리고 불행히도 그런 사례는 바로 지금 확인할 수 있다. 

 

'노숙자'가 바로 그런 이들이다. 이유는 다종다양하겠지만 결과적으로 이들은 '낙오자들'이다. 게다가 그 '낙오'라는 상황에서 다시 일어서고자 할 의욕마저 상실한 이들이다. 노숙자들은 사회적으로 경쟁이 격화되고 낙오자들에 대한 배려가 부실한 상황에서 발생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낙오자들'은 개인의 무능력함에서 발생한다기 보다는 사회 구조적인 차원에서 발생한다. 그리고 그 사회 구조가 '낙오자들'에 대한 배려마저 무시한다면 이들은 '노숙자'로 대표되는 '경제적 약자'로 전락할 것이고 심지어 '범죄자들'같은 사회 불안 요소로 변화할 것이란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영등포 집창촌 사건도 그런 시각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들은 '경제적 약자'일 뿐 아니라 사회의 모든 면에서 약자에 속하는 이들이다. 그런데 법과 사회는 그들을 죄악시한다. 따라서 '소멸시켜야 할 어떤 것'쯤으로 치부한다. 물론 여기에도 '약자에 대한 배려'는 없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무한 경쟁을 통한 승자독식의 사회고 낙오자들의 경우는 개인의 문제로 간주해 버리기 때문이다. 즉 그들이 '왜? 어떻게 낙오자가 되었는가?'란 질문은 사라지고 그저 개인적 무능과 결과론만이 강조될 뿐이다. 

 

그들이 현행법상 범법행위를 했다고 할 순 있다. 그러나 그 범법행위란 게 타인에게 엄청난 위해를 가하는 것인가란 점에서 보자면 문제는 복잡해진다. 개인적으로 난 그들의 범법행위가 다른 범법행위들과 동일하게 다루어질 문제는 결코 아니라고 본다. 아직까지 그들의 위치는 '범죄자'가 아닌 '사회.경제적 약자'니까. (물론 이 '사회.경제적 약자'란 범주엔 특수한 경우가 아닌 이상 업주들은 포함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