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먹고 바람똥

난 무식한 강기갑이 좋다.

The Skeptic 2011. 4. 16. 01:54

김종훈 통상본부장에게

 

난 그대를 잘 알지 못 합니다. 사실 별로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 인터넷으로 글을 쓰는 동안 몇 초정도 짬을 내어 검색만 해도 당신의 이력정도는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강조하건데 난 당신에 대해서 별로 알고 싶지 않습니다. 심지어 개인적으로 당신을 알고 싶은 마음도 별로 없습니다. 이유는 의외로 아주 단순합니다. 당신은 나와 닮은 구석이 있어서지요. 

 

한미FTA부터 당신의 활약상을 잘 보아와서 압니다. 당신에게선 '나는 전문가'라는 자신감이 넘쳐 흐릅니다. 매번 강조해서 미안하지만 난 당신이 '얼마나 대단한 전문가'인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최근에 한-EU FTA 협정문 번역 오류 사건을 보면 사실 그렇게 대단한 전문가란 생각은 솔직히 안 드네요. 물론 당신은 그깟 번역오류가 뭔가 문제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 정도 영어도 못 하는 게 더 문제아니냐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은 충분히 그럴만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협정문의 번역 오류는 분명히 심각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자칭 전문가로서' 그 내용에 대해 잘 숙지하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마저도 확인은 불가능합니다만.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당신은 전문가이자 공무원이란 사실입니다. 원칙적으로 나라의 녹, 즉 국민들의 세금으로 밥벌이를 하는 입장이란 말이지요. 그건 당신이 얼마나 잘난 인간인지, 얼마나 대단한 전문가인지, 얼마나 품격이 높은 인간인가와는 상관없이 당신이 하는 일이 국민들에게 이득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뭐 이 정도도 모르진 않으시겠지요. 

 

결국 당신에겐 당신이 추진해온 수많은 국제협상에 대한 내용을 국민들에게 제대로 전달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국민들의 대표체라고 할 국회와 국회의원들에게도 말입니다. 그건 공무원인 당신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게 싫다면 공무원하지 말고 다른 일하시면 됩니다. 자세히 알진 못 하고 앞으로 알고 싶지도 않지만 그 정도 능력은 되시지 않겠습니다. 

 

말이 좀 샜군요. 아무튼 당신과 전 비숫한 구석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오만함'이지요. 당신이 처음 한미FTA 공청회 자리에서 미국측이 제시한 이른바 4대 선결조건 중 스크린 쿼터 폐지와 관련해서 했던 발언을 기억합니다. '그럼 잘 팔리는 영화를 만들면 될것 아니요!' 잘 모르는 사이에 참 미안한 말이지만 그 발언을 접하고 전 참 오랫만에 속시원하게 비웃었습니다. 물론 그 대상은 당신이었지요. 

 

제가 자주 사용하는 비유지만 초등학교 야구팀과 국가대표 야구팀이 경기를 하면 누가 이길까요? 당연히 국가대표 야구팀이라고 답하겠지요. 그러나 정답은 아무도 이기지 못한다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현격한 수준 차이가 나는 경기는 애시당초 열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전 이게 사실이라고 봅니다만 신자유주의자들로 대표되는 이들은 그런 경기도 열릴 수 있다고 주장하더군요. 뭐 이건 통상 전문가인 당신이 잘 모르는 경제 이야기일수도 있으니 다른 기회에 언급하도록 하지요. 

 

아무튼 중요한 건 내가 당신을 마음껏 비웃었다는 겁니다. 물론 그건 아주 잘못된 방식입니다. 내가 비록 그런 문제에 대해선 당신보다 월등히 나을지 모르지만 통상 전문가라 불리는 당신과 비교해볼때 통상 분야에선 제가 보이지도 않는 하수일 수도 있으니까요. 조그마한 잔 재주 하나를 가지고 타인을 무시하는 건 우리가 초등학교 시절부터 잘못된 일이라고 배우는 것이니까요. 결국 세상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덕에 이만큼이라도 유지가 되는 거니까요. 

 

그래서 하는 말입니다. 전 당신보다 강기갑 의원이 좋습니다. 이유는 앞서 말한 것처럼 당신과 내가 '오만함'이란 부정적인 면에서 닮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제가 강기갑 의원을 사적으로 만날 일이 있고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저도 당신처럼 '강기갑 의원 공부 좀 하십시오'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전 그 말을 강기갑 의원 면전에서 하진 않을 겁니다. 그가 국회의원이라서가 아닙니다. 전 국회의원은 무섭지 않습니다. 차라리 동네 골목길에서 담배 꼬나문 중학생들이 더 무섭습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당신과 저의 차이가 있습니다. 

 

전 오만한 사람이지만 다행히도 제가 오만한 사람이란 걸 압니다. 때문에 타인에 대한 저의 비웃음이 주로 저의 보잘 것 없는 지식에서 기인한다는 것도 압니다. 그리고 저의 보잘 것 없는 지식보다 몇 수나 위인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알고 제가 모르는 다른 분야의 고수들과 만나면 제가 비웃음거리가 될 거라는 것도 압니다. 그래서 면전에서 대놓고 비웃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 편으론 저보다 잘난 것 하나 없는 사람들도 세상엔 정말 많다는 것도 압니다. 만약 세상에 뭔가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이 저나 김종훈 통상본부장처럼 오만한 사람들이라면 어떻게 될까요? 세상은 저 유명한 인도의 신분차별 제도인 카스트 제도같은 규칙들에 의해 여전히 폐쇄적인 계급주의 사회로 유지되고 있을 겁니다. 적어도 지금 현재 대한민국같은 나라에선 그런 사회가 정상적인 사회라고 보진 않습니다. 그러나 김종훈 통상본부장이나 저같은 사람들 때문에 역사가 거꾸로 흘러갈 수도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강기갑 의원같은 사람은 세상의 방부제같은 사람입니다. 

 

어떤 일때문에 김종훈 통상본부장께서 그 사람을 '무식하다'고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 무식한 사람이 대한민국의 다른 무식한 사람들을 대표하고 있으며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지요. 그 덕에 자칫했으면 우리처럼 오만한 인간들에 의해 거꾸로 흘러갔을지도 모를 역사의 흐름이 약간의 굴곡이 있을지언정 큰 틀에선 제대로 흘러가고 있는 겁니다. 

 

김종훈 통상본부장님, 뭐 지금도 잘 모르고 앞으로도 서로 잘 알 일은 발생하지 않을 테지요. 그래서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말씀을 드리자면 이런 겁니다. 김종훈 통상본부장님이나 저같은 사람이 만족스럽고 행복하고 편안한 세상은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결코 행복하거나 만족스럽거나 편안한 세상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해하실지는 모르겠지만 사실입니다. 

 

 

추신)

앞으로도 계속해서 통상 본부장일을 하실 거라면 제가 언급할 확률은 여전히 남아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