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은 늘 시궁창

노르웨이 테러범의 가부장제 칭송은 역사적 퇴행이다.

The Skeptic 2011. 7. 25. 22:50

역사적 퇴행

 

노르웨이 테러범에 대한 소식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국내에선 그의 '근본주의적 기독교'성향에 대해 언급한 언론에 대해서 기독교 단체들이 반발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의 반이슬람주의가 기독교적 가치관에서 기인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말하자면 이것은 '아니다'라고 무조건 부정할 문제가 아니라 종교가 어떻게 테러범의 가치관으로 오용되고 있는가에 대한 반성이 필요한 부분이다. 게다가 익히 알려졌다시피 기독교는 타종교에 대한 배척을 명시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만큼 종교라는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는 폭력의 정당화 도구로 이용될 소지가 다분하다. 

 

그리고 오늘은 더욱 우려스러운 소식이 전해졌다. 그가 '한국'과 '일본을 거론했다는 사실인데 그 내용은 '한국과 일본같은 가부장제를 확립해야 한다'는 주장때문이다. '여권신장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에 대한 반발 심리인 것 같은데 이걸 한 마디로 정의하면 <역사적 퇴행>이다. 여권의 신장은 20세기들어 등장하고 발전한 인권이란 개념에서 기인한다. 그것을 부정하겠다는 발상은 <퇴행> 그것도 인류의 역사적 발전을 거스르는 <역사적 퇴행>인 것이다. 

 

이 역사적 퇴행이 의미하는 바는 '가부장제적 질서의 재확립'이라고 주장한다. 노르웨이 테러범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수많은 미성숙한 남성들도 그렇게 주장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가부장제'라는 것을 보편적 인권의 관점에서 바라보자면 '성인남성을 제외한 다른 모든 이들에 대한 차별'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이것은 '근본적으로' 차별을 지향하는 질서다. 아주 자연스럽게 인종차별주의, 종교차별주의와 연결될 수 밖에 없다. 

 

'가부장제의 재확립'을 주장하는 것은 그래서 결국 성인남성들에게 그들 자신을 제외한 다른 모든 사람들을 차별할 권리를 달라는 주장인 셈이다. 인권은 20세기에 등장하고 눈부신 발전을 한 개념이지만 이미 한 세기를 지나온 이 시점에도 여전히 그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심지어 그들은 사람을 죽이고도 '필요한 일이었다'라고 주장한다. 

 

역시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에게 타인을 차별할 권리를 달라'며 폭력을 행사하는 인간들과 공존할 수 있는 방법같은 건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