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의 상인

벤 버냉키

The Skeptic 2011. 8. 10. 02:51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 위원회의 대장이다. 모든 나라의 금융 시스템이 저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미국의 경우엔 연방준비제도 위원회가 통화와 관련된 강력한 권한을 갖고 있는 걸로 유명하다. 덕택에 미국식 자본주의라면 똥도 좋다는 남한 자본주의자들에 의해 한국은행의 독립성이 강하게 주장되기도 했다. 물론 오랜 시간동안 지속된 군사독재 기간동안 정계-재계-학계의 삼각 커넥션에 의해 경제 자체가 특정 집단의 사적인 이익 추구의 도구로 이용되어온 역사적 사례가 존재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한국은행의 독립성이란 것이 민주화의 가치처럼 비춰진 측면도 있다. 

 

그러나 어차피 한 나라의 경제 정책과 통화정책이 각 기관별로 따로 노는 경우는 존재할 수가 없기 때문에 독립성이란 측면 역시 그 경계가 매우 모호한 측면도 있다. 말하자면 앞서 언급한 것처럼 특정 정치집단의 집권에 의해 경제가 사적인 이익추구의 도구로 전락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면 그건 일개 기관의 독립성만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란 의미다. 당장 죄박이가 집권한 이후로 모든 정부기관들, 심지어 공영방송까지도 독립성이 심각하게 훼손된 사례를 직접 목격하지 않았는가. 어차피 사회는 유기적인 조직체다. 어느 한 부분만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그리고 민주주의 국가라고 해도 결국 가장 많은 권한을 갖는 것은 정치분야다. 정치 개혁이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독립성운운하는 건 그래서 사실 큰 의미는 없다. 

 

각설하고 미국발 금융 사태에 대해서 말해보자. 이미 많은 곳에서 이슈가 된 사항이라 알려질만한 것들은 다 알려진 상황이다. 그 와중에도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의 대장인 벤 버냉키가 시장에 어떤 신호를 보낼 것인가가 관심이 되는 이유는 아무래도 미국이란 나라가 세계 경제에서 가지는 영향력과 그 미국의 통화정책에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조직의 수장의 발표이기 때문이다. 그의 발언에 따라 세계 경제가 술렁일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미 많은 분석에서 드러난 것처럼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점이다. 예전같으면 통화량 증가라는 정책을 통해 위기를 탈출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현재로선 그것조차도 대책이 아니란 것이 대부분의 분석이다. 즉 통화량이 부족해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란 의미다. 물론 최근에 벌어진 미국 경제위기의 대부분은 통화량 증가로 해소될 수 있는 것들은 아니었다. 다만 통화량 증가를 통해 해결하는 방법이 가장 손쉬웠을 뿐이다. 게다가 전 세계 기축통화인 달러를 발행하는 국가라는 이점탓에 통화량 증가가 그렇게 부담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미국식이란 단어의 가장 큰 특징인 개인의 자유에 대한 지나친 보장이란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문제가 적정한 수준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개인의 경제활동에 대한 무한한 자유 보장은 필연적으로 "승자독식"으로 이어지게 마련이고 이 '승자독식' 구조하에선 돈은 결국 극소수에게로 몰리게 되고 이 돈은 그저 축적된 자본의 형태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 즉 자본은 있지만 생산이나 수요를 창출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고 마는 것이다. 국가가 이 문제를 방치한채 채 경기를 부양하려면 결국 남는 방법은 계속해서 통화를 늘리는 것밖에 없고 미국은 그동안 그런 선택을 해온 것이다. 

 

문제는 이런 구조가 고착화된 상황에선 새로 유입되는 통화 역시 결과적으로 극소수에게로 몰리게 될 뿐이란 점이다. 통화량을 늘린 효과가 발생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단기적으론 효과가 있을 테지만 장기적인 측면에서 소수에게 집중된 부는 경제활동보다는 그저 부동산과 같은 자산으로 투자될 확률이 높고 따라서 자산 거품이 일어날 확률은 높아지고 이 거품은 다른 경제주체들의 비용만 늘리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문제는 벤 버냉키가 그런 경제구조 개혁이란 언급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잘못된 것, 적어도 현 경제상황에서 전혀 쓸모없는 것으로 판가름된 미국식 자본주의를 개혁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할 수 있을까? 경제 정책은 실질적인 유용성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런 경제정책조차도 '늘 해왔던 오래된 전통'정도로 생각하고 맹목적으로 따르는 이들이 대다수라면 개혁에 대한 반감은 거셀 것이다. 특히나 그런 구조를 통해 경제적 부를 축적해온 이들의 반발은 더 거셀 것이다. 게다가 표면적으로 아니라고 하지만 사실상 경제주체들과 정치주체들이 상당한 수준의 야합을 이루고 있는 미국에선 그 반대 역시 매우 조직적일 것이다. 

 

당면한 급박한 문제해결을 위한 뻔하디 뻔한 대책이 담길 것이란 점은 명백하다. 그러나 근본적인 대책은 언급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 그리곤 오바마에게 공을 넘길 것이다. 그리고 맹렬한 정치 공방이 이어질 것이고 모든 책임을 오바마에게 떠넘기고 구시대 질서로 회귀할 확률이 현재로선 가장 높아 보인다. 마치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노무현 대통령을 잡아 먹었던 것처럼 말이다. 문제는 그렇게 구시대 질서로 회귀한다면 우리에게도 별로 좋지 않을 것이란 거다. 단지 경제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말이다. 미국이 이번 위기를 통해 개혁의 길로 나설 것인가 아니면 역사적 퇴행의 길로 들어설 것인가? 우리에겐 꽤 심각한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