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츄어리즘

스포츠와 민주주의

The Skeptic 2011. 9. 27. 03:06

스포츠와 민주주의

 

스포츠맨쉽이란 게 있다. 최선을 다 하되 부정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으며 비록 경쟁자일 지언정 존중하라는 것이다. 스포츠 경기를 좋하지 않는 사람조차도 이 경구는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 경기종목에 따라 그리고 같은 종목이라도 지역적인 특성과 역사적 관습에 따라 스포츠맨쉽은 그 형태를 달리 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야구의 힛바이 피치드 볼같은 경우다. 우리는 투수가 타자를 맞춘 경우 모자를 벗어 예를 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미국 프로야구는 그러지 않아도 되는 식이다. 그리고 각 경우마다 나름 합당한 이유들이 있다. 

 

비록 드러나는 방식면에서 지역적인 차이들이 있긴 하지만 내용에선 앞서 언급한 것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사실 이 스포츠맨쉽이란 것도 지키기가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니다. 반면 스포츠 경기는 일상속에서 벌어지는 다른 경우들에 비해 그 드러나는 양태가 매우 단순한 편에 속하며 따라서 시비나 잘잘못을 따지기도 꽤 쉬운 편에 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포츠 맨쉽과 관련된 잡음들이 터져 나오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스포츠 경기가 본질적으로 '승부'이기 때문이다.

 

승패를 겨루고 순위를 정하는 스포츠 경기는 그야말로 극단적인 경쟁과 승부의 세계다. 게다가 참가하는 선수들은 그 실력의 높고낮음과 상관없이 모두를 자신이 승리자나 혹은 상위권이 되길 바랄 수 밖에 없다. 비록 입바른 소리로 '참가에 의의를 둔다'고 하지만 속마음까진 그런 선수나 팀은 드물다. 이를테면 눈 구경도 할 수 없는 자메이카의 선수들이 봅슬레이 종목에 참가하는 것과 같은 경우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때문에 경기는 늘상 과열되기 마련이고 순간적으로 스포츠맨쉽은 잊혀지기가 일쑤다. 심지어 선수가 아닌 관람자들까지도 그런 행동을 보이는 경우도 심심찮게목격할 수 있다.  

 

이 모든 사건들의 배후엔 역시 스포츠맨쉽의 실종이 있으며 다른 무엇보다도 상대를 존중하지 않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건 스포츠맨쉽의 핵심중의 핵심이라할 '상대에 대한 존중'이란 가치가 민주주의의 핵심적 가치와 같은 것이란 점이다. 때문에 스포츠 경기를 둘러싼 각종 잡음들이 어떤 이유로 어떤 과정을 거쳐 드러나는가를 살피는 것은 한 사회나 국가의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 수준을 알아볼 수 있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중국에서 열린 농구대회에서 중국기자들의 무례함이 다시 한번 도마에 올랐다. 사실 그다지 새로운 일은 아니다. 최근에도 친선농구대회에서 난투극을 벌인 사건이 있었으니까. 스스로를 세계적인 나라라고 자처하지만 모든 것을 승부와 강고한 국가주의로 몰아가는 모습은 그 기준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거듭 강조하지만 중국의 이런 모습을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니다. 문제는 사실 이런 문제를 지적하는 우리라고 그들보다 크게 나은 것은 없다는 점일 것이다. 물론 중국보다 나은 부분은 더 많지만 말이다. 

 

 

p.s.

중국의 이런 성향을 민족주의로 몰아가는 것은 온당치 않다. 중국이란 나라는 알다시피 민족이란 개념으로 정의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한족이라 칭하지만 실상 한족 역시도 중국의 인구와 민족구성을 고려해보면 그저 국가권력을 소유한 소수민족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즉 중국은 국가주의를 그 중심에 놓고 국가주의를 보완하기 위해 다른 개념을 차용하는 것이고 그 요소중의 하나가 민족일 뿐이다. 그리고 어쩌면 바로 그런 불안정한 국가주의 나아가 국가자체를 뒤흔들 수도 있는 불안요소들 때문에 더욱 더 국가주의에 집착하는 것일 수도 있고 그런 비이성적인 집착이 대중화되면서 비정상적인 인식과 행동으로 표현되는 것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