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은 늘 시궁창

관등성명을 대지 않아서 당황했다?

The Skeptic 2011. 12. 29. 18:40

관등성명을 대지 않아서 당황했다?

 

주변에서 하도 욕을 해대니까 이제서야 자기가 잘못한 줄 알았나? 아니 내 귀엔 자기 잘못을 알아 차렸다기 보다는 이렇게 여론이 나빠지면 다음에 도지사직 유지하기 힘들테고 그토록 사랑해 마지않는 완장질을 할 수가 없을 테니까 그냥 면피해보자고 하는 말로 밖엔 안 들인다. 왜?

 

목소리만 듣고도 자기가 도지사임을 알아 차려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당연한 의무를 행하지 못한 미천한 소방대원이 전보조치된 것을 지나친 처사라며 원대복귀 시키겠다는 말을 하기 전 트위터에서 이렇게 말했단다. 

 

"근무자가 기본을 지키지 않은 것",

 

그리고 전보조치를 취소하겠다면서 한 말에서도 똑같은 소리를 반복한다.  

 

"근무자가 관등성명을 대지 않아 당황했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난 의외로 119에 전화한 적이 많다. 대학생이던 시절부터 거의 매 년 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온갖 사건사고를 달고 다니는 인간이어서는 아니다. 그러니까 주로 이맘때 쯤이면 119에 전화할 일 많다. 길가다가 만취해서 이 엄동설한에 길바닥을 이불삼아 잠을 청하는 미련한 것들이 넘쳐나는 때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러다 죽든말든 내 알바 아니지만 그러기엔 너무 야박하지 않은가? 게다가 우리에겐 119와 112라는 편리한 정부 대행 서비스가 있지 않은가? 그래서 이 맘때면 거의 한 번정도는 119에 전화를 했었다. 그런데 난 그 때마다 전화를 받는 소방대원이 관등성명을 댔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 것이 뭐가 중요한가? 술먹고 떡이 된 이 미련한 인간이 어디서 사실상의 자살행위를 하려는 것인지에 대해 정확히 알려주는 것에 신경을 쓰느라고 그런 것따위엔 관심조차 없었다. 

 

비록 주관적인 경험이지만 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 거라고 본다. 전화를 받은 근무자가 관등성명을 대는지 안 대는지 하는 사소한 일따위에 신경을 쓸 수 있을 정도면 그건 전혀 긴급한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도 아니면 그가 도지사라서 모든 공무원은 민원전화를 받을 때 꼭 관등성명을 대야만 한다는 걸 너무나 잘 기억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런 절차를 생략한 것이 실로 엄청난 문제라고 판단했기에 계속 전화를 해서 '왜 관등성명 안 대냐?'고 난리를 피웠다는의미다. 

 

무슨 이유든 좋다. 그 어떤 이유든 내가 보기엔 그냥 완장질 좋아하는 늙다리 꼴통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