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은 늘 시궁창

완벽한 세상?

The Skeptic 2012. 1. 27. 17:22

완벽한 세상?

 

자주 하는 말이다. '완벽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설령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모든 면에서 불완전하고 한계가 명확한 인간이란 존재는 그것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 존재를 확인할 수 없는 것을 존재한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난 종교나 이념같은 것에 대한 광신적 태도를 혐오한다. 그들의 믿음이란 건 실증적이라거나 논리적인 것이 아니라 그저 믿고자 하는 의지의 발현일 뿐이다. 그리고 의지와 실증, 논리는 전혀 다른 범주다.

 

그래서 '존재하지도 않는 완벽한 것이 존재하는 양 이야기하는 것'은 그 자체로 성립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그런 것을 힘주어 이야기하는 것은 그것이 존재한다라는 주장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다른 의도를 담고 있는 것이라 보는 것이 더 맞다. 학생인권조례와 관련된 조선, 중앙, 동아같은 찌라시 삼류소설 신문지들의 공세가 그런 류에 해당한다. 

 

그들은 학생인권조례가 발효됨으로서 교권이 무너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 반증으로 최근 이슈가 되는 왕따 문제와 학교 폭력, 교권에 대한 도전을 들고 나온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번 반문해볼 필요가 있다. 그런 것들이 그렇게나 새로운 일이던가? 아니 전혀 그렇지 않다. 난 옛날 사람이다. 수업시간에 몇 명이 졸았다는 이유로 연대책임을 물으며 반 학생 모두에게 빠따를 돌려도 누구도 문제시삼지 않았다. 성적이 떨어져도, 수업중에 문제를 풀다 틀려도, 쉬는 시간에 복도에서 떠들었다고 기타등등 기타등등 거의 모든 경우에 체벌과 기합은 일상이었다.

 

그렇다면 그렇게 체벌과 징계를 통한 협박이 일상적이었던 시절엔 조선, 중앙, 동아가 에둘러 언급한 '완벽한 세상'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걸까? 미안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 때도 왕따는 있었고 학교폭력과 그 폭력을 통한 금품갈취도 빈번했다. 단지 교사에 대한 도전만이 미미했을 뿐이다. 이게 무얼 의미하는 걸까? 그렇다. 이건 그저 교사들에게만 편리하고 편한 세상이란 의미다. 학생들의 생활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 했다. 말하자면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폭력과 협박을 통해 덮어두는 거다. 

 

난 학생인권조례가 발효된다고 해서 이런 부정적인 사례들이 모두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하진 못 하겠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니까. 그러나 학생인권조례가 발효되면 체벌이나 징계성 협박같은 것을 통해 그런 문제들을 마치 없었던 일인양 덮어둘 수 없게 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학생들의 인권을 보장해 줌으로서 인권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엄청난 이익과 더불어 가장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늘 존재한다.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은 그저 우리들의 머릿속에서 상상으로나 존재할 뿐이다. 즉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전혀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문제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 문제가 드러나지 않는 세상이 더 문제인 것이다. 그렇게 없었던 일인 양 덮여버린 문제는 안으로 더욱 썩어갈 것이고 언젠가 더 큰 문제를 야기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문제를 더 큰 문제로 만드는 이들이 바로 존재하는 문제를 덮어둠으로서 '완벽한 세상이 구현되었다'고 주장하는 반편들이다.  

 

 

p.s.

적어도 내 나이쯤 된 늙은 이들이라면 이런 멍청한 주장에 동의하면 안 된다. 당신들이 어떤 학창 시절을 보냈는지 되돌아 보라. 조선, 중앙, 동아에서 개거품물며 떠드는 그런 일들이 전혀 없었나? 아니 그렇지 않을 것이다. 물론 당시보다 지금이 더 부정적으로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건 그 때가 지금보다 더 교육환경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 때보다 지금이 경쟁에 대한 압박이 더 심해졌기 때문이고 단지 가난한 부모밑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출발점에서부터 차별이 이루어질 수 밖에 없는 현실이 더욱 심화되는 바람에 어린 아이들이 느끼는 좌절감이 우리 때보다 훨씬 더 깊어졌기 때문이다. 우리 서로 명심하며 살아야 한다. 그런 현실을 만든 것도 우리 책임이라는 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