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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시대'

The Skeptic 2012. 2. 4. 01:03

'음악의 시대' 

 

라디오를 안 듣고 산지도 꽤 된 것 같다. 간혹 배철수의 음악 캠프를 듣긴 했지만 따져보면 그것도 벌써 1년도 넘은 일인 것 같다. 무엇보다도 그 시간이면 일을 하고 있을 시간이다 보니 더욱 그렇다. 그 이전에도 라디오를 잘 듣지 않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이전엔 라디오를 끼고 살았다. 물론 라디오이외엔 별다르게 음악을 접할 만한 객관적 여건이 되지 않았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국내 음악이든 서양 음악이든 음반은 늘상 금지곡이 너무나 많았고 음반이나 카세트 체이프를 사 모으기엔 주머니 사정도 간당거렸으니까. 

 

그런 라디오를 듣지 않게 된 것은 나이가 든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라디오 프로그램의 변화가 가장 큰 원인이다. 얼마전에 나온 에픽하이의 노래에도 등장하는 것처럼 DJ가 게스트를 모셔다 신변잡기나 늘어놓다가 개인기나 시켜보고 그나마 조금 낫다는 프로그램이라고 해도 깊이없는 멘트들이 오가는 것이 고작인데 심지어 노래조차 제대로 틀어주지 않는다. 그러다 특별 게스트라도 나오는 날엔 어김없이 음반 홍보다. 있던 정도 떨어지게 만든 주범은 사실 라디오였던 거다. 불행한 것은 지금도 사정은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는 거다. 

 

오늘 죄박이 낙하산 사장 하나 때문에 말도 많고 탈도 많은 MBC에서 '음악의 시대'라는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MBC미디어 개국을 기념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너무나 마음에 들었고 그 이유는 바로 별다른 멘트없이 모든 시간을 노래로 채웠다는 점이다. 그렇다. 난 그런게 그리운 거다. 라디오를 아날로그적 감수성이라고 칭하는 이들도 있지만 사실 난 별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단순히 기술의 발전에서 뒤쳐졌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호칭을 얻을 이유는 전혀 없다고 본다. 라디오는 단순히 기술로 치부될 수 있는 그런 게 아니다. 라디오는 그 안을 무엇으로 채우는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존재다. 그리고 난 여전히 그 가장 중요한 요소가 음악이어야 한다고 보는 사람이다. 

 

내가 지금도 전영혁이란 이름을 기억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아마도 남한 라디오 역사상 가장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전문 DJ일 것이다.(주1) 음악뿐만 아니라 그 음악에 대한 해박한 지식까지 말이다. 그것을 기억하고 그것의 소중함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면 여전히 라디오란 매체가 얼마나 파급력이 큰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라디오가 스포츠 신문의 삼류 소설같은 멘트들을 날리기 시작하고 예능 프로그램을 복사하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라디오는 스스로의 변별성을 상실해 버린 거다. 

 

아날로그적 감성? 그런 것과는 전혀 상관없다. 문제는 라디오가 스스로의 길을 다시 찾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일 뿐이다. 

 

 

주1)

다른 DJ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물론 나도 그들을 기억한다. 그러나 지금 난 그들의 이름조차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들도 훌륭한 DJ이들이긴 했지만 미안하게도 '전문 DJ'라고 부르기엔 미흡한 부분이 있다는 것이 내 판단이다. 

 

P.S.

죄박이 낙하산 김재철 사장을 몰아내기 위한 MBC의 파업을 지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