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은 점점 커지는데 의미는 점점 사라진다.
일은 점점 커지는데 의미는 점점 사라진다.
앞서 고백한 것처럼 난 여성 차별 문제에 대해서 '제대로 실감하지 못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 문제에 관해선 대체로 여성들, 약자들의 의견에 동의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번 나꼼수 비키니 시위 사건과 관련된 일련의 전개를 보고 있노라니 일이 지나치게 커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대관절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제일 처음 정봉주 석방을 둘러싼 정국에서 비키니 시위가 등장한 것은 아무런 문제도 아니다. 이유없는 폭력이나 불법행위만 아니라면 자신의 주장을 위해 그가 어떤 행위를 취하는가는 아무런 문제도 아니고 오히려 표현의 자유라는 차원에서 볼때 권장받아 마땅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뒤이은 두번째 사건은 어떨까? 그리고 이 두번째 사건에서부터 나의 당혹스러움 역시 시작되었다고 봐야할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비키니 시위에 대한 나꼼수의 첫번째 발언에 대한 내 감상은 '아무런 문제없음'이었다. 그들의 발언이 성적 대상화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 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정도 수위는 그저 웃어 넘겨줄 수 있을만 하다고 여겼다는 의미다. 그리고 고백컨데 이 두번째 사건에 대한 비판에 대해선 아직도 100% 동의하긴 어렵다. 그러니까 이런 거다. 표현 자체가 아니라 표현 수위의 문제였다고 하면 나 역시 수긍할 수 있겠지만 표현자체를 시비거는 것은 나로선 동의하기 힘들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나꼼수의 표현 수위가 지나쳤고 가볍게 사과함으로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 여겼다. 물론 나꼼수의 발언의 대상이 사회적 약자인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때문에 마초적이라는 비난을 받는 것은 나로서도 부인하긴 힘들지만 그에 대한 의문도 사실 많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꼬이기 시작했다. 나꼼수는 사과를 거부한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일련의 문제성 발언들이 등장한다. '생물학적 완성도' 이건 성적 대상화를 넘어 사실상 차별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다. '우리와 청위자사이엔 불평등한 권력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건 의도적으로 의미를 호도하는 행위다. 이미 대중적인 문제사안이 되어버렸는데 마치 나꼼수와 청취자들간의 문제일 뿐이라는 식으로 몰아가는 건 현실을 호도하는 것일 뿐이다. 이건 마치 '우리들만의 이야기인데 니네가 왜 끼어들어서 난리야?'라는 식인데 그럴 거면 뭐하러 여의도에서 무차별적인 대중들을 대상으로 공개방송까지 했는가?
첫번째 사건인 비키니 시위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이걸 가지고 시비를 거는 사람은 미안하지만 정상체위가 아니면 섹스를 하지 말라는 도덕적 엄숙주의자에 속한다고 봐야 한다. 두번째 사건도 그렇게 큰 문제 아니다. 나같은 사람은 문제라고 느끼지 못 하지만 약자와 피해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표현 수위가 지나쳤을 수도 있다. 이 경우 약자와 피해자의 입장을 고려하는 것이 옳다고 보기에 사과가 선행된 후에 그에 관한 좀 더 진지한 대화가 오고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냥 큰 문제없이 매끄럽게 문제가 해소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와 관련된 좀 더 생산적인 대화들이 오고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세번째다. 여전히 스스로를 어느 정도 마초적이라고 생각하는 나같은 사람이 보기에도 세번째 사건은 지나치다. 아무 문제도 아닌 일이 몇 번의 단계를 거쳐 큰 문제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이 과정을 돌아보며 내가 가장 의아한 것은 양 측에서 흘러나온 각종 주장들이 그렇게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인가 하는 점이다. 아니 결코 그렇지 않다. 이미 내가 학상이던 90년대 초반부터 반복적으로 제기되어온 문제에 불과하다. 말인즉슨 이 논쟁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인물들이라면 이미 그 당시부터 반복적으로 경험한 것들이라는 점이다. 이걸 이해하지 못 해서 서로 대립각을 세우는 것일까? 난 그럴 수는 없다고 본다.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이런 거다. 이건 이제 그냥 감정 싸움, 자존심 싸움이 되어버린 거다. 대놓고 이름을 거명하자면 진중권 대 김어준의 싸움이 되어버린 건데 문제는 이 싸움엔 이제 알맹이가 없다는 거다. 싸움 구경이니 그래도 조금 재미는 있겠지만 남는 건 별로 없을 것이란 이야기다. 게다가 이 싸움의 승패 역시 알 것같기에 그에 대한 흥미도 별로 없다. 논리 싸움에선 명분을 틀어쥐는 자가 이기는 거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이 싸움은 진중권이 이길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물론 난 이 싸움이 그렇게 굴러가는 게 별로다. 승패나 사과가 중요한 게 아니라 '성적 대상화'라는 문제에 대해서 좀 더 생산적인 논의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런 거다.
1. 성적 대상화를 금지되어야 하는 것인가? 불가피한 것인가?
2. 성적 대상화뿐만 아니라 각종 풍자의 대상에 약자가 포함되면 안 되는 것인가? 표현의 자유와 상충되는 것 아닌가?
당장 떠오르는 궁금증정도만 해도 이 정도다. 그리고 여전히 성인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 사회에서 성인 남성으로 자라버린 나같은 사람에겐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