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장의 착각
금융감독원장의 착각
금감원장 권혁세가 말하기를 한국의 재벌 체제가 무너지면 한국경제에 안 좋다고 한다. 몇 가지 이유를 들긴 했지만 미안하게도 그동안 수많은 재벌옹호론자들이 펼친 논리와 다른 것은 하나도 없다. 재벌의 고용효과를 강조하긴 하지만 그마저도 자료로서는 큰 의미는 없다.
즉 '과거 어느 시점과 비교하여 고용이 늘었다'라는 지표가 재벌 옹호론의 근거가 되진 못한다는 의미다. 어떤 기업이 망하지 않고 일정한 수준의 이익을 계속해서 낸다면 통상적으로 고용은 당연히 늘어날 수 밖에 없다. 그 고용 수치가 다른 중소기업들에 비해서 월등하게 높다고 하는데 이 주장을 뒤집어 말하면 그만큼 재벌에 대한 부의 집중이 심각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즉 재벌에 대한 부의 집중이 심화되어 재벌들이 고용을 늘릴 수 있는 배경이 되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는 거다.
그런데 권혁세란 사람은 분명히 자기 입으로 이런 부의 집중 현상이 재벌 위주 경제체제의 폐해라고 했다. 그렇다면 적어도 금감원장정도 되는 사람이라면 재벌이 고용을 늘린 원인이 어떤 것인지 잘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금감원이란 곳은 그러라고 있는 공공기관이다. 그런데 정작 하라는 일은 제대로 안 하고 밑도끝도 없는 피상적인 자료를 가지고 재벌 옹호론을 펼친다. 글쎄 나보고 이걸 믿어달라는 건가? 미안하데 난 그렇게 못 하겠다.
다른 근거가 필요하다. 이를 테면 현대자동차(주1)와 비슷한 수준의 매출과 영업이익을 올리는 다른 자동차 기업은 노동자를 얼마나 더 고용하고 있는가 하는 것들 말이다. 거기서도 의미있는 수치가 나온다면 그의 주장은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에 언론에 발표한 수치는 전혀 설득력이 없다.
그리고 권혁세란 인간이 빠진 결정적인 함정이 있다. 남한 국민들 대부분이 재벌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대부분 빠지는 함정이다. 즉 남한 경제에서 이미 재벌은 뺄 수 없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밉든 곱든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개인적으로 난 이걸 <대마불사 인식>이라고 부른다. 그렇다. 바둑 용어다. 대마, 즉 덩치가 큰 말은 쉽게 죽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걸 제대로 해석할 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대마, 덩치가 크다. 이 대마를 잡으려면 정말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쉽게 죽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실상은 전혀 다르다. 대마가 쉽게 죽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대마가 죽어 버리면 승부가 끝나기 때문>이다. 즉 내 대마가 죽어 버리면 난 승부에서 질 확률이 엄청나게 높아진다. 따라서 승부에서 지지 않기 위해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대마는 일단 살리고 봐야 한다.
지금 남한 사회에서 재벌을 바라보는 인식이 이런 식이다. 즉 대마(재벌)을 살리기 위해서 무슨 짓(온 국민에게 피해를 주더라도)을 해서라도 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기억해라. 당신들이 이런 대마불사 인식에서 헤어 나오지 못 하는 이상 재벌개혁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남한의 재벌은 애초부터 온 국민이 합심해서 밀어주었기 때문에 등장한 거다. 때문에 온 국민이 합심해서 그 함정에서 빠져나올 생각을 하지 않으면 영원히 그 함정에서 살아야 한다.
주1)
삼성전자를 예로 들고 싶었지만 뺐다. 그 이유는 삼성전자와 비교할 기업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가전, 반도체, 휴대폰 기타등등 기타등을 모두 한 회사로 분류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간혹 경제찌라시들이 외국의 기업과 삼성전자를 비교하는 기사를 내보내는데 주의해야 한다. 애플은 반도체나 가전제품 안 만든다. 인텔은 휴대폰이나 가전제품 안 만든다. 그런데도 남조선의 정신나간 경제찌라시들은 이들과 삼성전자를 단순비교하는 기사를 내보낸다. 당연히 신빙성은 전혀 없다.
p.s.
한때 노키아가 잘 나가던 시절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노키아란 기업이 핀란드를 먹여 살린다고. 그렇다. 어느 정도 사실이다. 그런데 지금 노키아는 예전의 위상이 많이 흔들리고 있다. 그래서 난 요즘 궁금하다. 옛날에 그렇게 말했던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만약 노키아가 망한다면 핀란드 국민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재벌이나 대기업 한 두개가 망한다고 나라가 거덜난다? 이게 정상적인 나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