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먹고 바람똥

아무 의미도 아니라는 것

The Skeptic 2012. 2. 25. 02:16

아무 의미도 아니라는 것

 

말 그대로다. 따지고 보면 아무 의미도 아닌 것이 존재한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처음에 등장했을 땐  어떤 의미가 있었는데 몇 가지 의문이 주어지고 그에 대한 해명이 석연치 않은 경우엔 애초에 주어졌던 의미는 그 효력을 상실하게 되는 경우다. 

 

예를 들면 이런 경우다. 타블로의 학력 문제가 불거졌을 때다. 처음엔 의심해볼만한 여지가 충분한 근거들이 나왔다. 그런데 이후에 그 의심들에 대한 반론들이 이어졌다. 문제는 그 반론들에 대한 최초 문제제기자들의 재반론들이 거의 대부분 아무 의미도 없었다는 점이다. 즉 최초 문제제기자들은 자신들의 의심에 대한 반론들에 대해서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식의 재반론들을 폈다. 물론 겉보기엔 그럴싸했다. 그런데 이건 매우 치명적인 문제점을 갖고 있었다. 그런 식으로 접근하면 세상엔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의심을 위한 의심'이란 것이 그런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도출된 결론들(사실 결론이 도출될 수도 없지만)은 <아무 의미도 없다>는 것이다. 즉 타블로의 학력이 위조되었다는 증거도 그렇지 않다는 증거도 아닌 상태가 되어 버린다. 결과적으로 우린 타블로의 학력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 아무 것도 증명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고 이 경우 가장 합리적인 행위는 그냥 '닥치고 있는 거'다. 왜? 어떤 것을 증명할만한 아무런 증거도 없으니 더 이상 언급할 것도 없어지는 거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이들이 이것 '우리는 아무 것도 증명할 수 없다'는 결론을 '의심'의 증거로 삼는다는 것이다. 타블로 사건이 벌어지고 온라인 상에서 약간의 공방이 오고간 이후에 내가 가장 의아했던 것이 이런 것이었다.

 

물론 세상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증거 불충분'인 사건들이 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심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부인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물리적으로 증명할 만한 증거가 없더라도 최소한 합리적인 의심이나 유추을 통해서만 제기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식의 특수성에 기댄 단순한 반박을 통해서 가능한 것은 아니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이런 률의 극단적 단순함을 통해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건 '무의미'일 뿐이다. 

 

어떤 것을 무의미하게 만들어 놓고 그것에 대해서 가치판단을 내리려는 반편같은 시도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아무리 좋게 봐주려고 해도 그저 비웃음거리에 불과하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