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품달 안 봤어? 그게 사람이야?
해품달 안 봤어? 그게 사람이야?
개그콘서트의 자신감은 참 신선하다. 저번 주에 신보라가 SBS 개그 투나잇을 응원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개그투나잇과 해품달은 의미가 사뭇 다르다. 개그 투나잇의 경우는 단순히 타사 프로그램을 응원하는 개그콘서트의 용감함만이 아니다. 개그 콘서트를 제외하면 더 이상 정통 희극 프로그램이 없다. 다른 예능 프로그램들이 있다곤 하지만 출연징는 개그콘서트 출연진의 1/10이나 될까 싶을 정도고 그나마도 개그맨 출신의 비중이 그리 높지도 않다. 게다가 출연하는 게스트들 역시 개그맨은 찾아보기 힘들다.
개그콘서트가 희극 프로그램으로서 독보적인 존재라는 의미가 아니라 오로지 그 프로그램 하나 살아 남아있는 상황이란 의미다. 그래서 난 신보라의 대사에서 용감함, 자신감이 아니라 진심어린 응원이란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해품달을 언급한 것은 그런 취지는 아니다. 안 좋게 말하면 해품달이 지니고 있는 대중적 인기도를 이용해보고자 하는 것이고 좋게 보면 시류에 대한 명민한 반응인 것이다.
정통적인 의미의 희극인 코미디는 극화된 요소가 강한 반면 개그라고 불리는 희극은 순발력의 예술이다. 적절한 상황과 적절한 시기에 적절하게 치고 들어가고 빠질 수 있어야 한다. 때문에 개그에서 순발력은 결코 떼어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 이런 성격때문에 간혹 말장난이란 비난을 듣긴 하지만 사실 희극이란 세상사를 장난처럼 가볍게 표현함으로서 보는 이들에게 부담없이 다가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말장난이란 지적은 고깃집가서 채식하겠노라고 우기는 것과 같다.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사실 개그콘서트에서 해품달은 언급하는 장면을 보면서 제일 먼저 떠올랐던 건 이거다.
"오! 예전부터 의심했던 사실인데 개그 콘서트가 정확히 알려줬어. 난 사람이 아닌게야."
그렇다. 난 해품달을 안 본다. 시청율이 무려 40%가 넘는다는 그 해품달을 안 본다. 왜 안 보느냐고? 이런 말 하면 해품달에 열광하는 분들에게 참 미안한 말이지만 솔직히 배우들이 연기를 못 한다.
간혹 연예기사들이 '연기력 논란 종식'과 같은 제목으로 기사를 뽑는다. 그런데 난 그 기사들에 대한 신뢰도가 바닥 수준이다. 그런 기사들이 주로 언급하는 내용은 특징적인 연기를 잘 했다는 식이다. '온 몸을 던져', '망가지는 것도 불사하고', '오열 연기' 같은 식이다. 그런데 난 그런 시각에 동의할 수 없다. 특징적인 장면의 연기를 잘 하는 것을 연기를 잘 한다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아닌 난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주 평범한 장면의 연기를 잘 하는 것이 가장 잘 하는 연기라고 본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해품달 배우들의 연기력은 '글쎄올시다'다. 그래서 안 보는 거다.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 드라마라는 건 안 보는 것이 더 나으니까.
'뿌리깊은 나무'를 한 번 돌아보자. 세자가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왔을때 한석규가 보여준 통곡소리없는 오열 장면을 기억하는가? 아마도 최근 들어 보기 시작한 드라마들을 통틀어 가장 감탄스러운 장면이었다. 독창적이면서도 이야기나 장면이 드러내야 할 감정적인 선을 온전히 보여주는 멋진 장면을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니까. 내가 모든 드라마에서 그런 장면을 바라는 건 아니다. 단지 일상적이고 평범한 장면을 일상적이고 평범하게 보여주길 바라고 최소한 대사를 씹어 먹지는 말았으면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