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덤
팬덤
나꼼수와 진중권, 참 질기게도 싸운다. 원래 하는 일이 그런 사람들이니 이해는 한다만 말이다. 아무튼 이 말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바로 '팬덤'이다. 사실 '속칭 나꼼수와 그 지지자들은 팬덤현상인가? 아닌가?" 여기서 모든 것이 출발하고 모든 것이 끝난다. 그리고 그 관점에서 보자면 분명히 나꼼수는 진중권에게 책잡힐 짓을 했다.
그 유명한 성희롱 발언 사건을 대하는 나꼼수의 태도는 이랬다. '우리는 팬덤이니까 그런 건 문제가 안 된다.' 그렇다. 실제로 팬덤안에선 그러 정도는 큰 문제가 아니다. 팬덤이 어떤 곳인가? 자기 오빠들의 매니저가 질서유지를 위해서 여중딩, 여고딩 몇 명 때렸다고 해도 '큰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곳이다. 타블로를 의심한다는 곳은 또 어떠하며 하나님의 권위를 참칭한 목사들이 이끄는 몇몇 대형교회들의 신도들은 또 어떠한가? 팬덤은 그런 곳이다. 약간 맛이 간 쉰 소리를 해도 그냥 선의로 받아 들여지는 그런 공간이다.
문제는 그런 팬덤 내부의 성향을 외부에 똑같이 적용하려고 하면 안 된다는 거다. 왜냐하면 팬덤 내부에선 그냥 선의로 해석하고 받아 들여질 수 있는 소리가 외부의 시각으로 볼땐 몰상식인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팬덤들의 경우를 유추해보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최근 사건들중 가장 비근한 경우라면 바로 김구라 사건일 것이다.
김구라가 결정적으로 방송에서 자진하차하게된 발언의 내용에 대해서 난 그냥 단순한 말실수라고 본다. 말이란 게 육하원칙에 의거하여 조리있게 말하는 것이 원칙이긴 하지만 사실 그렇게 말하며 사는 사람 없다. 대부분은 앞뒤 다 자르고 떠들거나 중요한 이야기는 쏙 빼고 곁다리만 떠들거나 남 이야기는 전혀 듣지 않고 자기 이야기만 하는 사람들이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내가 아는 한 말 실수는 김구라보다 일반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이 한다. 뭐 그건 중요한 거 아니고.
그래도 김구라가 예전 인터넷 방송 시절 막말하고 다녔다는 거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다. 실제로 그 방송을 몇 번 보기도 했다. 지극히 팬덤스러운 방송이었다. 이런 거다. 요즘은 실력파 아이돌 가수들의 시대라고 하니 안 그럴 수도 있겠지만 당시만 해도 아이돌 가수란 그냥 공장에서 찍어내는 비주얼 좀 되는 어린 것들이었을 뿐이다. 누구나 아는 이야기인데 그걸 대놓고 욕하고 그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좋아하면 팬덤이고 그냥 점잖게 '현 시점에서 바라본 아이돌 가수들의 문제점과 나아갈 방향'이라고 떠들면 그 수준에 따라 100분 토론이 되거나 그게 아니면 그냥 평범한 대화가 되는 거다.
팬덤과 일반적인 사람들과의 차이는 이런 거다. 팬덤과 일반인과의 간극이란 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그만큼 멀다는 의미다. 이 둘 사이에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생각한다면 두 가지 경우다. 심각할 정도로 현실 파악이 안 되는 것이거나 그게 아니면 도통하신 분이다. 그렇다면 이 쯤에서 다시 반문해보자.
"속칭 나꼼수와 그 지지자들은 팬덤현상인가? 아닌가?"
아니라면 그에 걸맞게 처신하면 되는 것이고 맞다면 자신의 외연을 지나치게 확대하려고 들면 안된다. 왜? 팬덤은 그 자신들만의 폐쇄성으로 인해 분명히 타인, 혹은 다른 팬덤과 분쟁을 야기할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그냥 음악하는 애들끼리 그러는 거라면 이해할 수 있다. 미국에서 힙합한다는 것들은 별반 다를 것도 없는 주제를 놓고 동서남북으로 갈라서서 총질까지 해댄다고 하지 않던가? 문제는 나꼼수의 장르가 정치라는 거다. 그리고 정치란 결국 더 많은 이의 지지를 얻는 것이다. 타협은 하지 않더라도 쓸데없는 분쟁을 일으킬 필요는 없는 거다.
P.S.
이런 글을 쓴다고 해서 내가 이번 총선 패배의 책임이 나꼼수에 있다고 주장하는 팬덤스러운 발상을 하는 건 아니다. 만약 진실로 그게 궁금하면 차라리 설문조사를 다니면 된다. 그게 아니라면 '누가 그러던데'라는 수준의 전해들은 이야기를 마친 진실인 양 떠들 필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