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하다.
답답하다.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 부실과 부정에 대해 폭로한 이의 인터뷰가 실렸다. 그는 통합진보당의 이러한 행태를 '관성'이라고 표현했다. 정확한 표현이다. 자칭 진보를 표방하면서도 그 행태에 있어선 그렇지 못한 경우들을 자주 목도할 수 있는 이유다. 불행한 점이라면 이지 제도 정치권에 진입하여 공당으로서의 역할을 하겠노라고 선언한 당에서 보여주는 관성의 행태가 학생운동하던 시절에서 단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 했다는 점이다.
그의 인터뷰 기사에서 표현된 많은 부실한 방식들, 사실 80년대나 90년대초반에 대학을 다닌 이들이라면 한두번은 겪었을 일이다. 더욱 불행한 사실이라면 그래도 그 당시에 벌어진 일들은 서로 다른 후보자들간의 합의에 의해 이루어진 행위들이란 사실이다. 총학생회 선거에 대한 참여도가 낮아서 선거 자체가 불발될 우려가 있는 경우 각 후보자들의 합의하에 이동 투표소도 운영하고 줄도 세우고 했던 것이다. 즉 공식적으로 허용되는 방식은 아니지만 선관위와 각 후보자의 합의하에 인정을 받고 각 후보자들 역시 똑같은 조건하에서 자신들의 둑표율을 높이기 위해 뛰어 다니면 되었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그런 합의도 없이 그저 늘상 해오던 대로 했다는 것이 문제다. '상황이 어쩔 수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물론 나 역시도 그런 주장에 대해서 충분히 공감한다. 통합진보당 당원들이라고 해서 여타의 일반 사람들보다 엄청나게 정치적인 의식이 높다고 보긴 힘들다. 반대로 정치적인 의식이 높다고 모두 절차적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것도 아니다. 게다가 외부나 내부의 비판조차 없이 오랜 시간동안 폐쇄적인 형태로 운영되다 보면 잘못된 절차에 대한 자기 반성역시 사라지고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관성'이다.
이번 통합진보당 사태에 대한 내 견해는 이렇다. 비례대표 선거가 이루어졌던 그 시점까지만 해도 문제는 그냥 단순한 부실이었거나 어느 조직에서나 발견되는 관성의 문제였을 확률이 크다. 그런데 이 문제를 부정으로 규정하면서 문제는 조금 커졌다. 웃기는 건 부정이라고 볼만한 충분한 정황 증거도 있고 그것에 반발할 수 있는 정황 증거도 충분하다는 거다. 그렇다면 조금씩의 양보를 통해 문제를 건설적이고 생산적인 방향으로 해결할 수 있는 여지 역시 충분했다고 볼 수 있다. 그게 아니라면 관성에 의한 실수를 저지른 쪽에서 대폭 양보함으로서 큰 문제로 비화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다.
결국 가장 큰 문제는 애시당초 이 둘 사이엔 신뢰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불행히도 이런 불신의 관계는 이미 학생운동 시절부터 쌓여온 것이라는 점이다. 당권파의 부정을 강력하게 비난하는 이들 역시 마찬가지다. 아무리 융통성이 없어도 부정이 아니라 단순한 부실과 관성에서 빚어진 실수일 수 있을 확률이 높다는 것을 모를 정도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그런 정황에 대해서 전혀 이해하려고 들지 않는다. 좋은 건수 하나 물었으니 밀어붙이겠다는 의심마저 든다.
학생운동 시절에 저지르던 관성을 답습해오다 문제를 야기한 쪽이나 그것을 엄청난 부정인 양 몰아가는 쪽이나 솔직히 마땅찮기는 마찬가지다. 그리고 일련의 과정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양쪽 모두 근 20여년 전에 보았던 학생운동의 행태들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고 이건 분명히 퇴행이다. 당권파를 비난하는 이들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보기엔 그들이 당권파를 몰아내든 아니면 당권파와 갈라서서 새로운 당을 만들든 결국 20여년 전 학생운동 시절 수준으로 돌아갈 거다.
남한에서 진보가 보수를 따라잡지 못 하는 결정적인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물론 진보의 역할을 정치권력의 장악이 아니라 정치의 수준 향상이라고 본다면 많이 달라지겠지만 문제는 그럴 경우 정당은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거다.
p.s.
아무튼 이 시점에서 제일 웃기는 건 이렇게까지 서로에 대한 신뢰가 없고 배려할 마음가짐도 없으면서 뭐하러 합당을 하고 야권연대를 했는가 하는 점이다. 혹자는 이건 원칙의 문제라고 할지 모르지만 상황이 이렇게 진행되면 합당도 패권주의고 지금 벌어지고 있는 분란 상황 역시 그 어떤 의견으로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건 간에 패권주의로 볼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아니라고 해도 소용없다. 밖에서 보자면 그렇게 보인다.
조만간 조중동에서 이런 내용의 사설이 올라올 거다. 아니면 이미 올라왔던가 말이다. 자칭 진보주의자들의 대중정치에 대한 아마추어적인 접근은 자신들의 이념적 선명성을 위해선 중요할지 모르지만 반대로 정치적 대중성은 희생시켜야 한다. 두 가지 모두를 잡고 싶다고? 아서라. 그런 수준으로 바랄 걸 바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