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당착
자가당착
원칙만 놓고 이야기하면 세상은 단순하기 그지없는 곳이다. 모든 것이 명쾌하다. 그런데 현실로 들어오면 그 원칙이란 게 얼마나 허망한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그래서 세상은 재미있는 것이고 나이 스무살에 공산주의자가 아닌 사람도 바보지만 나이 사십에 여전히 공산주의자인 것도 바보라는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서두가 긴 이유는 북한의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원칙만 놓고 보면 북한 사람들의 인권은 중요하다. 그 인권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북한 정권은 마땅히 사라져야할 정권이다. 단순하고도 명쾌한 결론이 나온다. 그런데 이걸 현실에 대입해도 그렇게 단순하고 명쾌해질까? 어떻게 해결이 가능할까? '북한 정권을 타도하면 된다'는 하나마나한 이야기는 하지 말자. 난 그걸 묻는 게 아니라 '어떻게'를 묻는 것이니까. 이렇게까지 말해도 앵무새처럼 같은 말 반복하는 반편들은 넘쳐날 테지만.
북한 정권을 타도할 수 있는 방법은 대체로 세 가지 정도다. 첮번째는 외부의 개입에 의한 것이고 두번째는 북한 권력 집단의 내부 분열이고 세번째는 북한 국민들의 봉기다. 역사적으로도 이 세 가지가 가장 흔한 사례들이다. 그렇다면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이 세 가지중 어느 것이 가장 가능성이 높을까?
첮번째 외부의 개입이다. 예상할 수 있는 외부 세력은 우리와 미국, 일본이다. 러시아와 중국은 그냥 모른 척 해주면 고마운 것이고. 그런데 여기서 일단 일본은 무조건 제외다. 일본의 평화헌법에 의하면 자위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군사행동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직 일본은 이 '자위권'이란 항목을 대단히 협소하게 적용하고 있다. 비록 극우파들이 끊임없이 시비를 걸지만 말이다. 그리고 같은 의미에서 우리도 예외다. 몇 번 말했다시피 우리에겐 작전권이 없다. 따라서 단독으로 군사행동같은 거 할 수 없다. 결국 남은 것은 미국이다. 미국이 나서줘야 그나마 우리나 일본이 그 꽁무니를 따라갈 수 있는 거다. 그런데 현재 미국은 11년째 전쟁을 이어온 아프가니스탄에서 아무런 소득도 없이 발을 빼려 하고 있다. 수많은 아프가니스탄 민간인 희생과 자국 군인들의 희생을 낸 채로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이 북한에 대해 군사 행동을 취할 가능성은 거의 전무하다. 만약 북한이 진짜로 대륙간 탄도 미사일을 발사해서 미국 본토에 타격을 가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두번째 북한 권력 집단의 내부 분열이다. 사실 북한 정권 붕괴의 가장 좋은 시나리오다. 역사적 사례를 보건데 권력 집단간의 분열은 대부분 속도전이란 양상을 보인다. 엄청난 변화를 동반하지만 소요되는 시간도 짧고 직접적인 피해가 닥치는 범위도 넓지 않다. 그런데 사실 이 시나리오도 그리 가능성이 높지는 않다. 황장엽이를 기억하는가? 북한에서 주체사상의 기초를 다졌다는 인물인데 귀순했다. 아마 지금까지도 귀순한 사람들중 최고위급일 것이고 북한에서의 위치 역시 그러했다. 그런 인물이 북한의 체제에 불만을 갖게 되었는데 고작 선택한 것은 남한으로의 귀순이었다. 북한 내부에서 변화를 모색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게다가 북한 권력집단의 최고위층엔 김일성과 같은 급의 인사들이 아직도 살아 있다. 그러니까 이른바 혁명 1세대다. 역사적인 사례들을 놓고 볼때 그 어떤 혁명이든 가장 정치적 신념이 강하다는 바로 그 혁명 1세대가 아직도 살아서 권력을 잡고 있는 거다. 일단 그들이 살아있는 한 북한 권력집단의 분열은 기대하기 힘들다.
세번째, 북한 사람들의 봉기다. 가장 근본적인 대안이지만 장애요소도 만만치 않다. 일단 북한 권력 집단은 군부를 동시에 부여잡고 있다. 국민들의 봉기에 무력으로 대항할 수 있다. 당연히 엄청난 피해가 뒤따를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이미 북한의 권력집단은 체제의 안정을 위해 무력을 서슴치 않고 사용해 왔다. 현재로선 국민 봉기가 발생할 확률이 그리 높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성이 잔무한 것은 아니다. 역시 역사적인 사례들을 놓고 볼때 국민 봉기가 발발하는 시점은 국민들의 불만이 극에 달했을 때이고 그것은 결국 경제적인 곤궁에서 비롯된다. 즉 지금 북한이 처한 경제적 상황보다 훨씬 더 열악한 상황이 오래 지속된다면 국민봉기가 발발할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그동안 북한이 겪은 상황들을 보건데 이 세번째 방안의 가능성이 가장 낮을 수도 있다.
이쯤 이야기하면 난감하다는 생각이 떠오를 것이다. 원칙은 확고한데 현실은 정반대니까. 게다가 더욱 난감한 건 여기서부터다. 북한 인권 문제 해결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은 북한 정권 타도다. 그런데 일단 앞서 설명한 바에 따르면 현재로선 가장 가능성이 높은 건 세번째 방안 국민봉기다. 그런데 그런 상황이 벌어지기 위해선 북한 국민들의 경제 사정이 지금보다 훨씬 더 악화되어야 한다. 원조고 경제협력이고 모두 중단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상황이 연출된다는 것 자체도 비인권적이라는 거다.
원칙만 놓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아니고 현실을 함께 바라보다 보면 북한 문제는 이런 자가당착에 빠지는 거다.
개인적인 견해를 밝히자면 첮번째나 세번째 방안은 실현가능성 제로라고 보면 된다. 남은 건 두번째 방안 뿐이다. 그리고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현 상황에서 시간은 북한 정권의 편이 아니다. 결국 우리에게 남은 건 어떤 식으로든 파국은 최대한 방지하면서 시간을 끄는 것이다. 그리고 그게 결국 햇볕정책이었던 거다.
북한의 인권을 강조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은 게 이런 가다. 북한 인권문제 좋다. 늘 그렇지만 문제는 다시 방법이다. 어떻게 해결하자는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