괘씸죄?
괘씸죄?
60넘은 노친네가 법원이 자기 말을 안 들어 준다고 대법원 표지석에다 망치질을 해댔고 잡혔는데 징역 1년의 실형이 선고되었단다. 몇 년 전에 똑같은 상황에서 숭례문에 불지른 정신나간 늙은이도 있었다. 정신나간 짓거리이긴 마찬가지지만 그 속내를 살펴보는 사람은 별로 없다.
대저 남한의 성인 남성 위주의 가부장제적 질서속에서 자라난 남자들은 대부분 이런 미친 짓거리를 저지를 가능성을 다분히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모두가 그런 정신나간 짓거리를 하는 건 아니다. 성인 남성 위주의 가부장제 질서라는게 성인 남성들에게 무척 좋은 것 같지만 실제론 그렇지도 않다. 가부장제란 질서 자체가 이미 가정에서 벌어지는 거의 대부분의 일을 책임져야 한다는 의미기 때문이다. 즉 특정한 사람에게 과도하게 책임이 부여되며 그 책임감의 또 대부분은 경제적인 문제다.
그런데 정작 그 경제적 책임감을 만족스럽게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은 사실 몇 안 된다. 자식들 학자금을 마련하지 못해 대출을 받고 그덕에 자식이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빚더미에서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면 그 역시도 경제적 책임을 다한 결과라 보기 힘들 수 있다. 그런데 따져보면 우리 나라엔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이들이 훨씬 더 많다.
게다가 다른 문제도 있다. 집안 일을 보고 아이들을 키우는 것 역시 가정내에서 이루어지는 중요한 일이다. 심지어 지금처럼 저출산이 문제가 되는 경우라면 국가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런 중차대한 일이 고작 돈벌어오는 일보다 덜 중요하게 여겨진다. 그래서 그 일은 성인남성보다 못한 여성들에게 주어지고 여성과 여성이 하는 일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이 성립한다. 결국 이런 차별은 가정내에서 부부갈등을 일으킬 소지도 크다.
성인 남성이랍시고 스스로 대단한 사람인 양 거들먹거리며 여성에 대해 차별적인 시선을 갖고 있지만 정작 실상 주어진 책임을 다할 능력은 안 된다. 그런 가장을 좋은 시선으로 바라봐줄 가족 구성원은 없다. 결국 가족이란 서로가 서로에게 최선을 다 하며 살아가야 하는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성인 남성 위주의 가부장제는 가정에 대한 왜곡된 시선만을 제공할 뿐임에도 그것밖에 모르고 그것에만 의지해서 스스로의 자존감을 유지하려는 이들은 결국 이런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아무튼 그런 사건이 벌어졌는데 실형이 선고되었다. 그런 정신나간 짓을 저지르는 이들도 마땅치 않긴 하지만 그렇다고 고작 재물손괴에 불과한 사건에 징역형을 선고하는 것도 정신나간 짓이긴 마찬가지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이 사건에 대해 '괘씸죄'가 개입되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이건 괘씸죄가 아니라 그냥 쫀 거다.
단순하게 이야기하자면 이 정신나간 늙은이가 불만을 갖고 있는 것은 법원이고 법관들이다. 만약 이런 이를 중형으로 다스리지 않는다면 법관들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다. 그게 선고를 내린 법관 자신일 수도 있고 동료 법관들일 수도 있다. 그걸 방지하고자 무리한 판결을 내린 거다. 자신들에게 벌어질지도 모를 미래의 불안 요소에 대해선 이토록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들이 정작 다른 이들에게 벌어질지도 모를 불안 요소들에 대해선 과연 얼마나 신경을 쓸까?
이른바 사회지도층이란 사람들이나 혹은 권력을 잡은 이들을 뽑을 때 명문대나온 사람인지 혹은 돈이 많은 사람인지,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인지 보다는 얼마나 타인의 삶과 어려움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먼저 살펴 보아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