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과 형식
내용과 형식
간혹 땡중이나 꼴통 목사 색희들이 이런 소리를 한다.
"중이나 목사에게 주어진 각종 제한들은 형식일 뿐 내용은 아니다. 고로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틀린 말은 아니다. 또 많은 무지한 중생들이 이런 사탕발림에 껌뻑 넘어가기도 한다. 그런데 말이다. 이건 완전 개구라다. 내용이 중요하다고? 물론이다. 중요하다. 그런데 그 내용이란 걸 깨닫는 거 그렇게 어렵지 않다. 여러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 지상낙원을 만들거나 혹은 세상에 이롭도록 하라고 한 신이나 혹은 신급의 인간이 미치지 않고서야 자신이 깨달은 이야기를 졸라 어려운 말로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했겠는가? 아니 그럴리는 없다. 그저 그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멍청한 인간들이 괜히 어렵게 만든 것이거나 사람들에게 사기를 칠 목적으로 뭔가 있어 보이기 위해 허세를 부리는 방편으로 동원하다 보니 쓸데없이 어렵게 보이는 것일 뿐이다.
땡중이나 꼴통 목사 색희들이 깨달을 정도면 중딩 수준만 되도 깨달을 수 있다. 문제 깨닫는 게 아니다. 구슬이 서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다. 알면 뭘 하나? 그걸로 아무 것도 안 한다면 말이다. 깨달으면 뭘 하나? 깨달은 대로 살지 않는다면 말이다. 제대로 된 스님이나 목사님과 땡중과 꼴통 목사의 차이는 바로 여기서 발생하는 것이다.
스님이나 목사란 직업은 깨달은 대로 삶을 살아가면서 다른 이들에게 모범을 보이는 직업이다. 그런 이들에게 계율을 지키는 행위는 직업적 행위고 중요한 것이다. 심지어 그 계율이 과거에는 옳았지만 지금도 옳은가 하는 것까지도 함께 고민해야할 정도로 말이다.
이런 경우를 제외한 대부분의 의식 혹은 의례적 행위들은 사실 큰 의미없다. 애국가나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것은 나의 깨달음을 실천하는 행위가 아니라 그저 내가 어떤 집단에 속한 사람이란 것을 보여주는 행위에 불과하다. 나아가 그런 행위들을 반복하게 되면 밑도 끝도 없이 소속감이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 문제는 이렇게 늘어난 소속감이란 게 깨달음과는 거리가 아주 멀다는 거다. 그냥 근거없는 존재증명에 불과하다.
그런 외적인 행위들에 의해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사람이나 혹은 그렇게 해야 정체성이 확립된다고 믿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누구나 알 수 있겠지만 그건 정체성이 아니라 그냥 맹목적인 믿음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