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 어정쩡함
'낯설게 하기'란 기법이 있다. 사전적인 의미로 보자면 평범한 행동이나 일상들에 새로운 방식을 추가함으로서 평범한 행동이나 일상이 새로운 어떤 낯선 것으로 느끼도록 만드는 기법을 의미하지만 그 반대의 관계도 성립하며 최근 들어선 전자보다는 후자의 기법이 더 각광을 받는 편이다. 그 이유는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는 것들이 실제론 당연하다기 보다는 추상적이고 주관적인 착각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고 의식적으로 이런 의식들이 대중적인 사실이 아님을 드러내 보여주기 위함이다.
근대적 사고방식에 따르면 인간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존재로 상정된다. 당시 같이 태동한 자본주의가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인간이란 개념을 아무런 성찰도 없이 당연한 것으로 상정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인간이란 사실 그런 것과는 별 상관없는 존재라는 것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즉 인간의 이성이란 것이 인간의 본성이나 근본적인 특징이라기 보다는 인간이 스스로 의식적으로 인지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이상 드러나지 않는 일종의 도구인 것이다.
영화 '헤드'는 그런 측면을 잘 이용한 영화다. 죽은 사람의 시신에서 장기를 적출하여 매매하는 범죄가 소재가 된 영화다. 얼핏 이런 류의 영화들을 연상하면 음산한 분위기의 범죄자들과 피가 튀는 액션같은 것이 연상되지만 이 영화는 그런 선입견을 '가볍게' 무시한다. 영화속에서 시신에서 장기를 적출하는 일을 하는 인물은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직장인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자세를 취한다. 곧 죽을 목숨으로 잡혀온 인물이 각종 도덕논리를 늘어 놓지만 다른 직업과 다를 바 없는 일이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이 앞에선 별 힘도 써보지 못 하고 무너져 내린다.
그런 측면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은 죽은 이에게서 장기는 적출해도 사람은 죽이지 않겠다는 인물이 돈을 더 많이 주겠다는 제안에 그럼 할 수 없다는 식으로 살인에 나서는 장면인데 이 장면만으로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환상은 충분히 깨지지만 그 다음 장면은 우리를 더욱 당혹스럽게 한다. 곧 살해당할지도 모를 인물이 자기를 살려주면 더 많은 돈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그 제안이 의심받자 그는 다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팔거나 저당잡히면 그 정도 돈은 마련할 수 있다고 강변하지만 그에 대한 답은 이렇다.
"제가 그런 돈을 받을 수는 없죠."
일반적으로 이런 대사는 우리가 아는 한 최대한의 선의에서 나온 말이다. 곧 자신이 죽일 사람에게 말이다. 영화는 이런 모순적인 장면들을 보여줌으로서 우리가 현실이라고 알고 있는 것들이 실은 오히려 비현실에 더 가깝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런 류의 영화들 상당히 좋아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시종일관 파열음을 내며 뒤뚱거린다.
그것은 바로 남매사이로 분한 두 주인공때문이다. 도입부분만 해도 특종을 잡기 위해 분주한 여주인공의 모습은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 특종이 될 잘린 머리를 중간에 본의아니게 빼돌린 탓에 남동생이 범죄자들에게 잡혀가고 죽을지도 모를 상황에 처하게 되자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남매간의 애정이란 상투적인 방식이 등장하면서부터 영화는 뒤뚱거리기 시작한다.
사실 이런 류의 영화에서 가장 지양해야 하는 것이 바로 '근거없는 선입견'이란 면에서 보자면 가장 먼저 그 관계를 의심해봐야 할 것은 바로 가족애란 관념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어느 순간 갑자기 그 선입견을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상정한 채 영화를 이끌어 가는 주요한 매개체로 인정해 버린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말이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만 그런 측면덕에 솔직히 난 전혀 해피하지 않았고 오히려 찜찜했다.
그런 찜찜한 느낌이 들면서부터 머릿속에선 다른 영화가 떠올랐다. '리틀 빅 히어로' 그는 일반적인 영웅이 아니다. 타인이나 세계 평화같은 것을 위해 용감한 행동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도 없고 책임감같은 것도 없다. 그저 남들처럼 그냥 모른 척 지나가고 싶은데 주변 상황이 도와주지 않아서(...) 본의아니게 그런 행동을 할 뿐이다. 만약 이 영화의 여주인공인 그런 캐릭터였고 그런 행동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적절하게 만들어 주었다면 일관성을 지킬 수 있지 않았을까 싶고 그것이 더 현명한 선택일 거란 생각이 든다.
p.s.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지만 적어도 영화와 같은 예술 장르들의 세계에선 이런 방식들도 이젠 상투적이 것이되어버린 느낌이 든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난 여전히 이런 스타일을 좋아하지만 말이다.